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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Scent

어느새 봄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고 여름이 오는 냄새가 났다. 여름의 향(香)이었다. 

 

*** 

 

“우시지마 선배! 오늘 토스, 괜찮으셨어요?” 

“아, 토스.” 

“네. 토스요. 오늘 공치는 게 조금 불편 해 보이셔서요.” 

“아니다. 토스는 좋았어. 오늘 어깨가 좀 불편해서 그렇다.” 

 

습관처럼 물었다. 오늘의 토스는 어땠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그에 대한 답은 항상 좋았다, 또는 힘이 약했다. 정도였다. 그 답에 불만을 느껴 본 적은 없다. 항상 하는 말에 항상 하는 대답을 준 것뿐이었으니까 불만을 가지고, 말고 할 게 없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조금은 무심한 그의 답에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냐 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말 그대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다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 행동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번짼 이 감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엇이냐. 였다. 항상 묻는 질문에 항상 간단하게 답 하는 선배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다음으로 중요했다. 이 질문에 대해선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얻은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묻는다면 우시지마 선배는 나에게 있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배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우시지마 선배를 보며 시라토리자와로 가기를 꿈꿔 왔으며 학교에 와 배구부에 들어가서부턴 우시지마 선배에게 토스를 올려 줄 수 있는 주전 세터의 자리를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기에 우시지마 선배는 자신에게 있어 꽤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결같이 간단하게, 무심하게 답을 하니까 거기에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다. 두 번째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을 한 마지로 정의하자면 그냥 정말로 ‘서운함’ 이 다인 것 같다. 이유는 첫 번째 문제의 이유와 똑같다. 이렇듯 정리를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질 줄 알았는데, 편해지기는 커녕 우시지마 선배 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만 불어나고 있었다. 

 

“우시지마 선배. 오늘은 토스 어떠셨어요?” 

“괜찮았다.” 

 

또, 또. 또 같은 답이었다. 요 일주일은 별 다른 말 없이 괜찮았다. 또는 좋았다. 가 다였다. 다른 날처럼 어디가 좀 걸렸다 이런 말 조차 없었다. 한 번 느끼기 시작한 감정을 멈출 줄 몰랐다. 미친 듯이 느껴지는 서운한 감정은 제 자신조차도 표정관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어? 시라부! 너 어디 안 좋아? 표정이 안 좋네.” 

“..아. 선배.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어지러워서요.” 

“어지러우면 오늘은 쉬어도 괜찮다 시라부.” 

 

짧은 우시지마 선배의 대답에 표정이 안 좋아진 이후로 계속 깔아져 있던 표정에 텐도 선배가 물어왔다. 다른 사람이 느껴질 정도라면 슬슬 심하다는 걸 느끼던 도중 옆에서 우시지마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프면 쉬어도 좋다는 말. 평소 같았으면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텐데 오늘따라 나오지 않았다. 우시지마 선배는 연습에 제 토스가 없어도 연습에 아무 지장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말이어서 표정은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우시지마 선배의 말에 대답 또한 할 수 없었다. 

 

“그래. 오늘은 쉬어라 시라부. 선배들도 다 그렇게 말하시잖냐.” 

“아..., 타이치.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볼게. 연습 빠져서 미안하다.” 

 

체육관을 나와 혼자 기숙사를 가는 내내 생각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말로 서운함 뿐인지, 혹은 다른 감정이 섞여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다른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은 대체 무엇이길래 자기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걷는 내내 그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더니 기숙사로 가는 길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 어느새 벌써 기숙사에 다 달아있었기 때문이다. 

 

“어? 너 웬일로 지금 시간에 와? 부 활동은 어쩌고?” 

 

같은 반 친구 카루호였다. 워낙에 친하게 지내는 건 타이치 밖에 없었던 터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반에 있으면 하루에 한 번은 꼭 대화를 나누는 애였다. 

 

“아,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와, 네가 몸이 안 좋아서 부 활동에 빠지는 날이 다 있네. 너 몸 안 좋아도 부 활동엔 꼭 참여했잖아.” 

“아.. 그랬던가. 미안한데 나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 

“아! 몸 안 좋다 했지. 미안 미안 내가 너무 오래 끌고 있었나 보다. 먼저 들어가 쉬어.” 

 

고마워. 짧게 답한 나는 기숙사 1층 건물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 빠르게 방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자마자 한 일은 씻는 것이었다. 지금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체육관 전용 샤워실을 쓰는 것보단 기숙사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씻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당장 찝찝하더라도 기숙사에서 씻는 걸 택했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좋았다. 조금은 무서울 체육관 전용 샤워실에서 씻는 것보다 지금 자신의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씻는 게 훨씬 쾌적하고 심적으로 가벼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다시, 우시지마 선배가 생각이 났다. 항상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공을 내리 꽂는 자세. 항상 멋지다 여겼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더 멋있는 것 같다. 아, 잠시만. 지금 나 얼굴 빨개졌다. 

 

“어? 타이치. 일찍 왔네. 오늘 연습 일찍 끝났나 봐?” 

 

다 씻고 나와보니 타이치가 벌써 와 있었다. 내가 그렇게 오래 씻었나. 싶기도 하지만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연습이 일찍 끝난 것 같았다. 

 

“아, 오늘 우시지마 선배가 먼저 들어가 본다고 하셔서. 그냥 접고 왔어.” 

“그렇구나. 너 씻어. 나 잠깐 산책 좀.” 

 

우시지마 선배가 어쩐 일로 먼저 들어가 보신다고 하신 거지. 연습은 항상 끝까지 채우고 들어가셨었는데. 혹시 몸이 안 좋나. 제대로 된 토스를 받지 못하신 건가. 아 그건 아닐 거다. 내가 아니어도 더 오래 호흡을 맞춘 세미 선배가 있으니. 괜스레 착잡해졌다. 우시지마 선배의 걱정이 이렇게까지 생각이 이어졌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시지마 선배가 미운건 미운거지만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였다. 항상 끝까지 하던 연습은 일찍 접은 이유가 혹시 건강상의 문제는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 가 많이 있을 수가 없었다. 산책한다고 나온 발걸음은 어느새 3학년 기숙사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우시지마 상. 안에 계세요?” 

“.. 아. 시라부.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던 모양이였다. 안에 있냐는 말에 곧바로 철컥-하고 열리는 방 문이 반가웠지만 그 뒤에 이어서 오는 말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듣는 말투이지만 오늘따라, 아니 요즘 들어 서운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다정하게 해 주면 좋을 텐데. 

 

“아니요. 무슨 일은 아니고.. 오늘 연습을 일찍 접으셨다고 하셔서요. 혹시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아, 그냥 피곤해서 먼저 가겠다고 한 거다. 그야말로 넌 괜찮나?” 

“.. 아. 저요. 전 괜찮아요. 연습 다 못 채우고 가서 죄송해요.” 

 

예상치 못한 우시지마 선배의 걱정에 훅-하고 가슴이 떨렸다. 가만 보니 귀 한쪽도 붉어진 느낌이 난다. 떨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크게 뛰는 심장의 소리가 들릴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3학년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아, 진짜 뭐야 이거.” 

 

진짜 이 감정 뭔데. 뭔데 이래.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행동을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이게 정말로 사랑이라면 안 될 일이었다. 상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국가대표 배구팀에 들어갈 사람. 꼭 그게 아니어도 우시지마 선배의 미래는 창창했으니까 혹시라도 제가 망치면 안 됐다. 

 

“사랑이야..?” 

 

사랑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게 맞았다. 자신이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은 사랑이 분명했다. 

 

“짜증나..” 

 

눈물이 났다. 자신의 감정을 지금 알아차린 저 자신에게 짜증이 났고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하는 자신이 불쌍했다. 자꾸만 신경질이 났다. 그리고 곧 자신의 지금 모습이 생각나 더 짜증이 나 눈물이 더 흐르는 것 같았다. 이 늦은 밤에 슬리퍼나 질질 끌며 걷는 모습에, 고개는 푹 숙여 눈물이 나 닦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꼴 사나울 것이 분명했기에. 

 

“.. 라부..! 시라부..!” 

“우시지마 선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니, 누군가 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단박에 우시지마 선배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제 상태는 폭발 직전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 감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여기.. 내가 어지러울 때 먹었던.. 하..” 

“..천천히 말하셔도 돼요.” 

 

꽤 뛰어왔던 모양이다. 숨이 차 말도 잘 못 하는 선배를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뛰어오신 거지. 피곤하다던 사람이. 

 

“하. 여기 내가 어지러울 때 먹었던 약인데, 효과가 좋아서.” 

“...이거..저..” 

“네가 먹었으면 좋겠군.” 

“아.., 이거..전해주시러 오신.. 건가요..?” 

 

쿵, 쿵. 설렘으로 가득 찬 가슴이 뛰었다. 그와 동시에 잠시 진정돼 있었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우시지마 선배의 이 행동을 조금은 오해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고백의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프면.. 너와 연습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선배, 오늘 정말로 피곤해서 연습, 일찍 접으신거에요?”

 

문득, 우시지마 선배가 오늘 정말로 피곤해서 연습을 일찍 접은 게 아니라 내가 없어서 일찍 접었다면, 나는 뭐라고 생각하면 좋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네가 없으니 연습이 잘 되지 않더군.” 

“...저, 조금 오해해도 돼요?” 

 

조금은 당돌한 제 말에 동그랗게 눈이 커지는 우시지마 선배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에는 아직 다 지지 않고 남아있는 약간의 벚꽃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봄은 당신과 시작하지 못했지만, 여름의 시작은 당신과 함께이길. 

 

어느새 봄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고 여름이 오는 냄새가 났다. 여름의 향(香)이었다. 

안녕하세요! 믕믕입니다! 이번에는 여름이 다가와서 나름 여름을 주제로 써 봤어요! 우시지마와 시라부는 뭔가 봄의 살랑살랑한 느낌에서 시작 안 하고 땀 냄새 나는 여름에 시작 할 것 같아서 여름이 시작 될 쯤에 간질간질한 연애를 시작 하는 느낌으로 써 봤는데 잘 전달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ㅠㅠ 재밌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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