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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enix

갑돌

  이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흐름을 거슬러 순리의 강에 거꾸로 머리를 처박은 자에 대한 느리고 긴, 불친절한 이야기이다.

 

 

*

 

 

  사막과도 같은 곳에서 유일한 오아시스 지대에 자리한 매리코파 카운티, 그 방대한 땅 위로 주름 잡힌 수백 개의 골목 중 가장 어슥하게 접힌 곳에서 비릿한 쇠냄새가 어둠과 맞물리듯 피어올랐다. 뜨거운 일광에 의해 색이 바랜 듯, 밝은 회색빛 바닥에 가만히 놓인 살덩이가 내뱉는 호흡은 없었다. 반항의 흔적으로 해괴하게 망가진 손끝에는 날이 밝으면 바스라져 의미가 퇴색될 살점이 엷게 맺혀있다. 남자는 그것을 보며 입술을 가로로 굳게 다문다. 기이한 형상의 손가락이 거칠게 거머쥔 냄새를 감히 향기라는 부드러운 언어로 어루만져도 되는지 잠시 고민한다. 오늘의 결론 역시 향기라는 범위 주변을 맴돌다 사라진다. 바닥을 뒹구는 시체가 긁어내린 흔적으로 인해 따끔거리는 목 언저리를 손으로 매만진다. 살갗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그 이상의 상처는 없었다. 오늘의 먹잇감은 단단한 몸에 상처를 낼 정도로 거센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날카롭게 휘어진 가장자리를 드러내자, 마구잡이로 일어난 목뒤의 상처가 처음의 맨들한 상태로 아물어갔다.

 

 

  '당신에게서 피 냄새가 나요.'

 

 

  오래전에 들었던 숨죽인 목소리가 골목에 울리는 착각이 든다. 오늘의 불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후에, 여전히 자신을 뒤쫓는 둥그런 머리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잠긴다. 마른 낯이 잠시 어른거리며 작은 동요를 일으켰다.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아 올리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닥을 바라본다. 비스듬하게 틀어진 목의 연한 근육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날이 빳빳하게 선채 죽어있다. 설단에서 느껴지는 혈온은 인상이 구겨질 정도로 미지근했다. 몇십 배는 더 넓은 벌판에 가늘은 몸을 뻗고, 좁디좁은 통로를 누비던 붉은 혈행은 없다. 온도를 머금은 피가 목에 난 두 개의 작은 구멍 틈새로 전부 빠져나간 탓이다. 더 이상 생명으로서 움직임은 없을 예정이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제외한다면 어둠이 닿아있는 이 좁은 공간에 살아있는 생명은 없다. 그전에,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살아있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생명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는 살아있는가, 혹은 반대로 죽어있는가. 그 조차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질문이었다.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생사의 눈에 난 자들이 언제나 고뇌하는 일종의 카르마였다.

 

 

   낮 동안 작열하던 태양 주변에서 몸을 바싹 말린 구름은 밤의 숨을 머금어 어둠의 부피를 더했다. 끝이 뾰족한 달이 샛노란 색으로 젖어들고, 구름의 잿빛 혼탁함이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달을 가리면 걸음에 속도를 더하며 두 다리에 힘을 싣는다. 고작 몇 센티 정도 무릎을 굽힌 자리에는 구두굽 아래로 성긴 거미줄 모양의 작은 균열이 생긴다. 콘크리트 주변의 모래 알갱이들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쓸려 제 섬약한 몸뚱이를 오르르 뒹굴리면, 그 잠깐 사이에 균탁의 주인은 사라지고 공허가 남는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주변은 고요로 일렁인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어둠이 콤콤하게 가라앉은 지붕의 군집 위로 제 몸을 올렸다. 가벼운 발걸음은 어떠한 잔먼지도 일으키지 않는다. 곧은 허리로 주변의 속도를 체화하며 차가운 뺨에 닿는 무색의 공기를 가른다. 겅중거리며 걷는 공중은 손톱으로 긁어내려보아도 잡히는 것이 없다. 하늘에는 반쪽짜리 달이 걸려있다. 가라앉은 정적에 귀가 잠시 멍해지면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를 죽이러 오신 건가요? 담담하게 물었던 소리의 파동에 홀리듯 내뱉었던 대답을 떠올리자 혈액과 기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몸뚱이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든다. 아릿한 착각이 드는 귓바퀴를 만지며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 뒤면 보름달이 뜰 것이다. 그날은 우시지마가 소년을 만나기 위해 피닉스로 가는 날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낮은 지붕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물러난다. 자잘한 소음과 함께 높게 솟은 빌딩이 모습을 드러내면 푸르게 발광하는 간판 뒤로 가볍게 착지한다. 도심의 모래와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가장자리를 구둣발로 대충 쓸어내린다. 부옇게 내려앉은 먼지를 닦은 자리에 제 엉덩이를 붙인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먹잇감이 가지고 있던 혈액의 향취를 되새긴다. 여전히 감흥 없는 냄새였다. 그의 사냥은 언제나 배를 불린다는 원초적인 부분에서 성공했으면서도, 새로운 향기를 찾는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부분에서는 실패였다. 향기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고약하고 미미한 후각적 요소들의 연속이었다. 제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이래로 찾은 것은 거진 죽음의 존재 앞에서 뭉그러지는 활기였다. 이런 젊음이 가진 일시적인 냄새는 더 이상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끌어당기지 못 했다. 꺼지지 않는 진한 활기의 향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제 코끝에서 맴도는 향기를 잊을 또 다른 향기가 필요했다.

 

 

  그가 내려다본 곳에는 치기 어린 젊음들이 한가득 쏟아져있었다. 공기중에는 퀴퀴한 땀내음과 함께 온갖 향수 냄새들이 어지럽게 섞여있다. 그들 중 하늘을 바라보는 이는 없다. 내일의 종말을 목전에 둔 것처럼,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인 듯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입구에 기다랗게 줄을 선채로 그렇게 이슥한 새벽에 젖어 아침을 맞이할 뿐이다. 그들은 곧 밝아올 아침이 녹진한 피곤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고 있다. 태반이 찰나의 유희를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이었다. 그와 반대로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곧은 속눈썹 아래에는 억겁의 시간을 보내온 눈동자가 자리해있다. 갈색 혹은 늪 색. 그 중간 어딘가 갈피를 끼운 눈동자에 보도블록을 횡단하는 여러 형태의 두상들을 눈에 담는다. 다양한 색과 길이의 머리카락들을 비집고 머릿속에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뒤통수가 가만히 맺힌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모든 순간에는 옅은 잔상이 따라붙는다. 부드러운 엷은 색의 머리카락에서 맡을 수 있는 샴푸의 향기를 되새긴다. 그 동그란 뒷모습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순간들을 대신 눈에 담듯, 일정한 리듬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는 얕은 희락이 담겨있었다.

 

 

  즐거움을 뒤로하고 그 형상을 떨쳐내고자 거리를 쓸던 시선을 옮겨 하늘을 담는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성두가 가득 찬 밤하늘이다. 밤이 물러나고 어스름이 차갑게 밝아오면 별은 일광에 밀려날 것이다. 또다시 어둠이 되풀이되기 전, 이 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단 두 가지뿐이다. 되도록 인간을 피해 몸을 숨기는 것. 그리고 향기를 잊게 할 또 다른 향기를 찾는 것. 후자는 언제나 실패였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형상을 가까스로 떼어내니 이제는 기억을 뒤쫓아온 향기가 그를 괴롭혔다. 그 향기는 죽음 바로 아래에 깔려 제 존재를 흉흉하게 내뿜는다. 들숨에 짙게 베인 향이 비강을 비집고 들어와 오랫동안 그의 코끝을 절였다. 곁에 있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이 황홀할 정도의 향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버드풋/버드푸드(bird foot) 의 꽃말은 '다시 만날 날 까지'입니다. 뱀파이어라는 설정을 조금 더 알아보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와서 약간의 후회가 듭니다. 월간 우백의 첫 호, 우백데이에 공개되는 것이라 욕심을 내었는데 그 때문에 이것 저것 맞추려다보니 분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더 길어지는 게 무서워 급하게 전개한 부분도 있습니다. 글이 불친절하지요. 죄송합니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부탁드립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아 갈 길이 멉니다. 모자란 글을 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그리고 관심 가져주신분들 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앞으로도 우시시라 많이 좋아해주시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기쁜 우리 우백 날!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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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요청으로 해당 글은 부분 공개되었습니다. (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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