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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와 사랑의

규칙

​윤또니긔여어

  귓가에 울리는  노랫소리는 꽤나 익숙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에 와서 1번, 총 10번을 들어온 곡이고 오늘로써 11번째였다. 지겨울만도 하건만 이 노래가 오늘따라 서럽게 들리는 것은, 이 노래가 당신에게 바치는 노래이기 때문일것이다.


 

  '오늘은 이제 이제 안녕, 다시 만날때까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오늘은 이제 안녕? 그런 같잖은건 누가 정한건데. 누구맘대로 안녕이야. 나는 당신과 배구를 하려고 이 학교에 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여기에 당신이 있으니까, 그 어렵다는 시험도 통과했다.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졸업해버린다면 내가 이 학교에 있을 이유는 없어져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올리는 공이라니, 고시키 같이 빽빽 울기만 하는 꼬맹이에게 공을 올리라니, 차라리 그냥 내 손으로 공을 터트려버리고 말지 그런 것은 내 토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곧 피아노 소리가 잦아지고 머리가 벗겨진 교장이 폐막을 알렸다. 이렇게 짜증이 치미는 졸업식인데도. 당신에게 줄 꽃다말이 상할까 세게 쥐지도 못했다. 곧 가족이며 후배들이 몰려들어 꽃다발과 사진을 나누었다. 하지만 내 시선이 향한것은 늘 시끄러운 텐도 선배도, 먼저의 세터였던 세미선배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이였다. 이미 전국 곳곳으로 인기가 좋은 우시지마씨의 품안에는 그 넓은 품으로도 다 안지 못할 만큼의 꽃다발이 안겨졌다.  어느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한 운명이다. 크게 걸음을 옮기면 주위가 썰물처럼 갈라졌다. 감이 좋은 인간들은 싫지않다. 특히 이럴때 눈치 좋게 길을 터주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탁월한 센스에 박수라도 싶은 마음이였다. 손으로 작게 칭찬하며 우시지마씨에게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형형색색의 꽃다발 너머로 당신의 얼굴이 보였다. 짜증난다. 이깟 꽃 주제에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을 방해하다니 싫은 사람의 멱살을 쥐는 것 처럼 바스락 거리는 싸구려 포장비닐을 쥐고 바닥에 내던진다. 당신의 품에 있어도 좋은 것은 나와, 내 공과, 내 꽃다발 뿐이다. 하나 둘 씩 당신의 주위로 꽃다발이 떨어졌다. 마찰로 꽃잎이 뭉개지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상을 쓰고 마지막 꽃다발까지 빼내어 바닥에 내던졌다.그리고 비어버린 당신에 품에 단 하나, 나의 꽃다발을 넣었다. 이상적인 광경이다. 비록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나를 향한 마음의 이름따위 모르지만 당신의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다. 앞으로 할 고백은 평범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직하고 곧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고백은 따로 있다. 상당히 구식에다가 도박이 필요한 방법이지만  로맨스 소설하나 읽지 않는 당신에게는 딱 어울린다. 나는 세터, 당신은 윙스파이커 내가 올린것은 공이든, 말이든 무조건 당신에게 닿는다. 말하자면 확룰 100퍼센트의 도박이다.

 


"우시지마씨, 첫눈오는날 학교 앞에서 만나요. 휴대폰은 집에 두고 오시고요"

 


'들었어?' '시라부에게 이런 순수한 면이 있었나?'  '귀엽다-'


그제서야 열이 오른다. 잠시 잊고 있었다. 여기는   강당이고 지금은 졸업식, 불행하게도 이런 촌스러운 고백을 전교생에게 모두 들리고 말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알겠다."


  역시 당신은 이 말의 의미를 모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스포츠와 고백은 보는 사람이 많으면 좋다고 들었다.  내 말은, 고백은, 나의 오랜 짝사랑은 꼭 당신에게 닿는다.

 

 


  그 뒤로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 사실 보고싶어 견딜 수 없지만 첫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고 한 약속을 해버렸으니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당신을 볼 수 없다. 그것이 약속이고, 보려고 노력해도 이미 당신은 어느팀의 선수로서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말을 정정하자. 100퍼센트의 도박이 아니라, 모 아니면 도인 50퍼센트의 도박으로, 

  수업시간에도 창밖을 보는 일이 늘었다. 아침에 흐려진 하늘을 보곤 혹시나 눈이 내리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곧 얼지않고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웃어버린적이 한 두번이아니였다. 당신이 가고 나서 부활동은 쉬고 있다. 내 빈자리는 새로운 1학년 세터가 채웠다.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별로 내가 필요는 없었다. 나 말고 다른 삼학년은 넘쳐나고 당신이 없는 배구부에 의미는 없다. 내가 하는 것은 그저 눈을 기다리는 일 뿐이였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부활동을 하러 오라는 시끄러운 고시키의 말을 무시하고 집에 오면 넋놓고 바깥을 바라보다가 잠을 잤다. 당신이 없는 학교는 따분하고 재미없었다. 내가 있는 의미또한 찾지 못했다. 그런 학교에서 도망치듯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안 끄고 나갔던 TV에서 이번년에 눈소식이 늦니. 이러다가는 이번 겨울은 눈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평소 같으면 신발을 더럽히는 것이 사라지니 좋아할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망할 눈은 어느것 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뉴스 대로라면 나는 당신을 만나지 못한다


  깜박 밤이 들었다 꿈속은 밝았고 눈이 내렸다. 하얀 눈에 반사된 빛에 시야가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눈이 소복한데도 꽃이 자라고 춥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있었다. 이상하게 춥지 않았던 내 어깨에는 당신의 겉옷이 걸어쳐 있었다. 익숙한 그 향기가 코를 찔렀다. 꽃향기보다 깊게 콧속에 들어와 박혔다. 천천히 꽃을 피해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입을 맞췄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흠칫거리며 눈을 뜨니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래도록 불편한 자세로 잠을 취한 탓이었다. 스트레칭이나 할 요량으로 뻣뻣하게 군은 몸을 일으키자 시선에 딱 맞게 뚫린 창문에 비친 것은 하얀 가루와도 같은 것이 떨어지고 있는 광풍 경이였다. 서둘러 창문을 열어 밑을 살피자 꽤 쌓여 있었다. 첫눈, 당신과 했던 기약 없는 약속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실수로 잠에 들어 혹시나 당신이 나왔는데도 결국 돌아간 것이 아닐까. 갖은 걱정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열어둔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방안의 공기를 식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것이 눈이 오는 증거라면 더 차갑게 만들어도 좋았다. 교복을 입을 그대로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집을 뛰쳐나갔다. 멀지 않은 학교는 금방이었다. 다리는 가벼웠다. 마치 당신에게 공을 올릴 때만큼이나

 


  "우시지마씨-"

 


  턱턱 막히는 숨과 함께 당신의 이름을 토해냈다.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을. 보란듯이 텅 빈 운동장에 토해내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르다가 지쳐 결국 스탠드에 앉아 쌓인 눈을 발끝으로 툭툭 쳐내었다. 역시 오지 않는 쪽이 훨씬 나은 족속들이다. 녹으면 질척거리고 이렇게나 함박 내리는데도 당신은 오지 않는다.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 같은 것을 품게 만든 것은 다 이 눈 탓이었다. 겉옷을 입지 앉은 어깨에 눈이 쌓여 온도가 내려갔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시렸다. 당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눈이 차가워서 인지,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 터였다. 모 아니며 도인 이 도박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어깨가 시렸다.
추웠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이라고 해도 우는 모습을 공기중에 노출하는것은 싫었다. 


  정리하지도 못해 부스스한 머리에도 어느새 눈이 쌓였는지 처음 때보다 무거웠다. 아니, 확실한 눈일까. 왠지 따듯한 것 같다. 급하게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모양 빠지게 우는 것을 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감성에 충만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위로라니, 차라리 그냥 집에 갈걸, 입술을 잘근거리며 쏟아낼 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댁은 누군-"

 


  말문이 막힌 게 부끄럽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르고 기다렸던 당신이었다. 묘하게 추위가 줄어든 것도 어깨에 걸쳐진 오래된 당신의 운동복 상의였다.


 

  "학교라고 해서 어딘지 몰라서 부실에 있었다."

 

  덤덤하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아 주는 눈은 따스했다.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당신에 눈에는 봄이 핀 것만 같았다. 금세 또 눈물이 차올랐다. 바보 같게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아한다. 가벼울 것 같은 말은 생각보다 덩치가 커 쉽게 입 밖으로 나와주지 않았다. 


  "좋아한다 시라부 "


  그 말에 어미에는 내 이름이 실려 있었다.. 고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이 말을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었나?"

 

 


나는 세터 당신은 에이스.

내가 올린것은 어느것이든 당신에게 닿는다.

그것이 공이든, 사랑하는 마음이든
 

아. 정말 정말 즐겁고 재밌었습니다~~ 우시시라 영원히 흥하기를 살짝 빌구.. 백조택 너무 아름다워서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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