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USSR
LAST TOSS
김철수
영원할 줄 알았던 고등학교 2학년이 저물었다. 3학년 선배들은 은퇴와 동시에 졸업을 했고 그렇게 아주 당연한 듯 나와 우지시마 선배의 인연은 끝났다. 사실 처음부터 별거 아닌 관계였다. 인연이라 칭하기도 초라한.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의 배구를, 그의 서브, 그의 패스, 그의 스파이크 까지도, 난 모조리 사랑하였다. 그래도, 그 역시 날 나름 사랑했었나보다. 나의 서툰 고백을 받아 줬으니. 뭐 그건 어디까지나 고등학교때가 끝이었지만. 나는 그와 짧은 연애를 했다. 그 끝은 나였지만 여지는 너였다. 우리는 고등학생때의 짧은 연애를 끝으로 안부 전화 한 통 안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뭐 내가 없다 해도 그가 배구를 그만두진 않겠지만, 나한테는 끝이었다. 그는 내 배구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만 뒀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마지막으로 난 배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산지 벌써 9년, 이젠 너의 이별의 말에 제 감정도 조절 못하고 우는 애송이에서 벗어나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배구는 하지 않았다. 가끔 선배들을 만난다며 불러내는 타이치에 전화에도 응하지 않았다. 바쁜 그가 있을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 조차 꺼려졌다. 그 마음은 1년, 2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짙어져 갔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게 마치 아주 아름다워 절대 훼손하기 싫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이 먹어감과 함께 같이 나이 들어가는 선배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내가 사랑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길. 변하지 않길 빌었다. 그래서 그의 기사도 일체 보지 않았다. 간간히 타이치가 전해주는 소식들만 확인할 뿐, 이건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다시 배구를 하고 싶어질 까봐. 다시, 너에게 매달리게 될까봐, 그때의 추억을 다 져버릴까 무서웠던 나의 어리석은 발악이었다. 사실 이건 핑계일 지도 모른다. 그래, 난 아직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고. 과거의 추억이 바뀌는 것도 싫었지만 현재의 내가 초라했으니까. 사랑한다는 흔한 말조차 생각도 못할 만큼 초라한 사람이니까, 다시 돌아와 달란 소리 따위 입에도 올리지 못하는 나니까.
. 그런 나에게 타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넌 과거에 너무 연연한다고. 그 상태로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이 말을 듣고 사실 태연한 척 했지만 조금 울었다. 아니 펑펑 울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아주 희미한 빛을 내고 있는 달을 보며 마치 제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뭐 그 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매우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여자 친구를 사귀어도,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분명 고등학교 시절엔 한번쯤 해보고 싶던 일들이었는데 엄청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이유를 알았지만 부정 하였다. 그렇게 사는 나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타이치냐
-그럼 너한테 전화할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냐
-용건
-싸늘하긴
-용건
-이번주 주말에 배구부 부원들끼리 약속 잡혔어. 이번엔 나와.
-싫어
-나와
-싫다니까
-우시지마 선배도 오신대
그 말에 잠시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왜 와
-왜 오긴, 주장이고 에이스인데 한번 쯤 와야지. 지금 휴식기잖아
-아, 어쨌든 안가
-너 이번에 안오면 후회할껄? 아니 지금도 충분히 후회하고 있잖아.
정곡을 찌르는 말 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거야. 언제까지 과거에만 연연해 살래. 언제까지 피하면서 살거냐고. 한 번쯤 잡아봐야지, 너도 보고 싶잖아. 그만 튕기고 나와. 그리고 발신자 제한으로 오는 전화 꼭 받고
뚝, 매정하게 끊긴 전화를 한참동안 잡고 있었다. 그래 어찌 안보고 싶겠냐. 내 첫사랑인데, 2년간 함께 울고 웃던 동료들인데.
-그래서 무서운거 라고 멍청아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래, 소중했기에 더 무서웠다. 내가 지나간 세월동안 변한 그 사람들에게 실망할까봐, 그들이 그 시간동안 변한 나에게 실망할까봐. 그게 내가 만남을 피하던 유일한 이유였다. 한참을 고민의 강에서 헤엄치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발신자 제한 번호로 온 전화였다. 평소처럼 무시 하려 했지만 타이치의 말이 신경 쓰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여전히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장난 전화인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순간
-시라부인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멍청이처럼 옅은 숨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듣고 있나.
두 번째 너의 말이 들렸다. 여전히 대답 하지 못했다.
-듣고 있는 거 같으니까 말하지. 보고싶다, 시라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숨이 멎어버릴뻔 했디.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보고싶다, 시라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인가 볼을 세게 꼬집어 봤다. 볼이 얼얼할 뿐 잠에서 깨진 않았다.
-너의 토스도 그립고 너도 그립다.
-누가 시켜서 하는 말 입니까.
-내가 누가 시킨다고 이런 말을 할 사람처럼 보이나.
-아니요.
조금 웃었다. 진심이었다.
-고등학교 배구 코트를 빌렸다. 시라토리자와로 올 수 있나
-언제요?
-지금.
-지금요?
저절로 놀란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래, 기다리고 있지. 부실 앞에서
그 말을 끝으로 뚝 전화가 끊겼다. 갑작스래 끊긴 전화에 당황하기도 잠시 얼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근 10년 동안 한 고민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보고 싶어 한다. 내 토스를 그리워한다. 이 사실 만으로도 다른 사실들은 다 필요 없는 일들이 되는 기분 이었다. 급하게 부실 앞으로 갔다. 거기엔, 네가 있었다. 10년전과 달라진건 거의 없었다. 그저 아주 약간 키가 컸고 조금 더 남자다워졌을뿐.
-너는 달라진게 없군
그가 나에게 인사 대신 건낸 첫 마디었다.
-선배도요.
눈을 마주 칠 수 없었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불러 주셔서 기쁩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배구를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그 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말투였다.
-토스를 올려줄 수 있겠나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그걸 왜 저한테
순수한 의문의 말이었다. 나보다 좋은 세터들은 널리고 널렸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너의 토스를 받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너의 말에 내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널 보았다. 웃고 있었다, 11년전 어느 경기때처럼
혹시 실례되는 부탁인가
-아니요. 그럴 리가.. 바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부실 안으로 가지, 미리 허락은 받아놨다.
-네
널 따라 들어간 부실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
-바로 부탁하지
-네
오랜만에 올리는 토스에 혹여나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했다. 토스가 올라갔다, 너의 폼은 여전히 그 때와 똑같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릴 뻔 했다.
-10년 쉰 거 치고는 좋은 토스군
-칭찬, 감사합니다.
-궁금하지 않아
-네?
-내가 갑자기 널 부른 이유 ,안궁금한가
-네에, 좀 궁금합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야, 고등학생때로
네가 또 웃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계속, 연락하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피했다. 그래도 그리웠다. 그래서 토스를 부탁했다, 이걸 부탁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너한테
여전히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 그때와 같은 일은 없을거라고 약속한다. 그러니 부디 돌아와 줄 수 있나.
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너의 품에 안겼다. 너의 향 역시 10년전과 다를 게 없었다.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얀 첫눈이
어 일단 제 비루한 글을 월간에 실게 되서 영광입니다. 이거 쓸 때 약간 피 토 할뻔 했습니다. 부디 잘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