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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落園)

사나

0)

  기숙사 침대에서 맞는 아침이 슬슬 익숙해질 법도 됐건만 2층 침대에서 감은 눈을 뜨자 보이는 가까운 천장은 아직도 가끔씩은 놀라는 것이였다.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에 비치는 반쯤 감겨 졸린 눈을 한 저 자신을 보며 칫솔에 치약을 짜내어 이에 멋대로 쑤셔넣었다. 뻣뻣한 솔들의 집합이 입 구석구석을 쓸어냈다. 아침은 먹고 싶지 않았다. 흐트러진 연갈색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정갈하게 정돈되는 사선으로 잘린, 비대칭의 앞머리를 보며 입의 거품을 뱉어냈다. 

  조금은 추운 날씨에 흰 티셔츠를 안에 입고 그 위에 와이셔츠를 입었다. 단추를 잠그던 때, 일어난 듯한 룸메이트의 이름을 불리며 시계를 흘낏 보고는 시간을 말하며 “늦겠다”하고 타박했다. 아이보리색의 조끼를 입고 흰색 블레이저를 입었다. 무언가 더 걸쳐야 할까하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날씨는 꽤나 좋았다. 온화하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선선하다고 할 정도는 될 것이다. 이미 늦어 아침을 먹지 않고 급식실을 지나쳐 문으로 나가는 저를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고 교정으로 향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였으며 그 일련의 과정엔 조금의 위화감, 또는 괴리감이라 불릴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의 졸업식이였다
  나, 시라부 켄지로는, 내일로 하여 죽는다

1)
  왜냐고 하면 할말이 없다.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에 대해 ‘왜 그러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가. 태초(太初)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서 부터였을 것이고, 나의 근본이 있다면 그곳에서 시작된 일일 것이다. 딱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유한한 생명체는 그 끝을 두려워 한다고 하였나, 그렇다면 저는 유한하지 않은가 싶어 시라부는 피식 웃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3학년들의 졸업식은 아직 준비 중일 것이다. 그 증거로 여기 3학년 명찰을 달고 바쁘게 움직이는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시라부가 3학년 3반에 들어가자 우시지마는 없었다. 야마가타는 방금 어딘가로 나갔다며 웃는 얼굴로 시라부를 맞았다. 

  “어디 가셨는지...”
  “나도 잘 몰라, 그냥 나갔는데 졸업식 전에는 오지않을까.”

  딱히 어디를 다닐 사람은 아니라 생각해 반으로 가장 먼저 온 것인데 의외의 답변에 시라부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선 반을 나왔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디로 가야할까, 시라부는 인파에 섞여 복도의 오른쪽으로 걸었다. 벽에는 간간히 아직 떼어내지 못한 연말 발표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뜯어내려다 귀퉁이만 찢어져 테이프와 붙혀진 색새의 종이조각이라던지, 하는 종류의 사소한 것. 짙은 남색 바탕에 3학년 1반 (三年 一班)이라는 흰색 글씨가 쓰인 간판이 보였다. 


   “시라부?”
  “세미상, 우시지마상 보셨습니까.”


  시라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묻자 세미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대답 안하셔도 어떤 말이 나올지 대충 예상이 간다. 

  “와카토시? 교실에 없어?”
  “네, 방금 다녀왔습니다만은...”

 

  음, 그렇구나. 낮게 나지막히 중얼거리고선 세미는 약간 웃으며 시라부에게 말했다. 

 

  “와카토시만 졸업하는 거 아니거든, 이 귀엽지 않은 후배야.”

 

  세미의 말에 벙찐 표정을 한 시라부는 표정을 풀어내며 말했다. 그렇지, 우시지마상이 아니라 3학년 졸업식이지. 시야를 살짝 가려내던 앞머리를 치워내며 시라부는 생각했다. 마지막, 오늘은 마지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날이였다. 바람 파지는 소리를 내며 살짝 웃어버리고선 시라부는 세미에게 오랜만에, 아마 처음으로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이 후배녀석아.”

  세미가 시라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어뜨리며 말했다. 장난스럽게 웃는 세미의 모습에 시라부는 떨떠름한 듯 자신의 정수리를 스스로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래, 좋은 게 좋은거지. 답지 않게 안일한 생각을 해버리며 시라부는 다시 반을 나왔다. 

2)
  텐도 역시 그의 반에 있지 않았다. 이걸로 주전 선배들은 다 찾아본건가 싶어 시라부는 한숨을 쉬었다. 텐도야 항상 어딘가로 뛰어다니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하였다. 카와니시를 찾아 5반에 가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시라부는 자연스레 반에 들어왔다. 3학년은 혼잡하여 괜찮다 하였지만 사실 타학급의 반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고, 만약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어떻게 온 학교인데, 정학당할 수 있었기에 시라부는 평소에 카와니시의 반에 들어가는 편은 아니였다. 어쩄던, 괜찮잖아. 

  “타이치, 반에 있냐- 어라, 텐도상이 왜 여기 계십니까.”
  “아, 켄지로...”

 

  안그래도 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시라부의 이름을 부르는 카와니시를 보며 시라부가 텐도에게 물었다. 

 

  “우시지마상 어디로 갔는지 혹시...”
  “흐음? 나도 몰라~ 졸업식 끝난 다음에 찾아봐.”

  깐족거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시라부는 무언가 잊은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나 모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졸업식 외에도 저의 마지막이기도 했으므로, 그리고 아직은, - 시라부가 반의 앞쪽에 있는 초록색 칠판 위의 교훈 옆에서 쉴새없이 그 바늘을 돌리고 있는 시계를 흘겨보았다. 짧은 바늘이 9를 가르키고 있는 긴 바늘과 겹치기 직전이였다. 시간은 꽤나 남아있었다. 아, 시라부가 작게 말하고선 다시 카와니시에게 몸을 돌려 일관성이라느니 완벽한 블로킹, 같은 배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듯한 텐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 손짓에 먼저 시라부를 바라본 것은 카와니시였고, 텐도가 시라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시라부가 고개를 아래로 까닥, 하며 말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텐도상.”

 

  시라부에 말에 둘 다 의외인 듯 시라부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텐도가 먼저 피식, 웃고선 시라부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너도 3학년 되는거 축하해, 하고 밝게 눈꼬리를 접어내며 말하는 텐도에 시라부는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카와니시는 눈을 마주해 바라보다 잘 가라는 듯 설렁설렁 손을 흔든다. 그때 텐도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아, 하는 짧은 탄성에 시라부는 고개를 돌리었다. 

 

  “내년 배구부, 잘 부탁한다.”

 

  시라부와 마찬가지로 텐도가 무슨 말을 할것인지 짐작가지 않아 듣고 있던 카와니시도 아주 살짝, 입꼬리만을 올려 웃으며 말하였다. 

 

  “나도, 내년 잘 부탁한다.”

 

  시라부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만을 하고선 반을 나왔다. 할 말이 없었고 해도 된 말은 없었다.

  웃는 저들 사이에 저는 정작 무엇인가 하여.

 

3)
  고시키, 몇반이였더라. 그 역시 우시지마를 찾지 않을까 싶어 돌아다녔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에 설마 아직도 기숙사에 있나 싶기도 하였지만 항상 아침연습이 있던 배구부의 하루예외에 늦을 애는 아니지, 라고 단정지은 시라부는 3층으로 내려왔다. 1학년들로 가득 찬 복도는 왠지 재잘거림도 노골적으로 들이닥쳐오는 시선도 많아 빠르게 그의 반에만 들려 없으면 오후 연습 때 보기로 하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부활동은 졸업식이라며 쉬곤 했지만 배구부는 왠지 부원들 모두 마지막 연습을 함께 해주는 것에 찬성하여 아침연습 대신 오후연습을 넣은 것이였다. 만약 그 마저 없었다면 오늘 우시지마상을 찾기는 아예 그른 것이였을지도. 문 위에 달린 표지를 스윽 읽고선 시라부는 앞문을 열었다. 드르륵 소리에 이쪽으로 향하는 쌍의 눈들을 무시하고선 둘러보자 유난히 밝은 기운이 맴도는 (시라부는 전적으로 그 기운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고 확신하였지만, 독보적임을 부정하진 못했다.) 가지런한 앞머리의 남학생을 발견하고선 입술을 슬쩍 열어 말을 뱉으-

  “고시ㅋ,”
  “시라부상! 저 보러 오신겁니까?!”

 

  려고 하기도 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외쳐대는 후배님에 시라부는 마음속으로 마른세수를 반복하며 말했다. 오후 연습 관련이라던가 배구부 문제라던가를 계속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고시키에 시라부는 옅게 한숨을 겹치며 말했다. 어, 그래, 그런데 말 좀 들어라. 그 말에 금새 진정하고선 차렷자세로 말을 경청하는 듯 포즈를 취하는 고시키였다. 

  “우시지마상 봤어?”
  “아니요, 오늘은 아직 반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냐, 대답인 듯 중얼거리는 시라부에게 고시키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급한 일이 아니시라면 부활동 끝나고는 어떠십니까?”

  "뭐... 급할 것 없지.“

 

  사선의 앞머리를 후, 하고 날리며 답하는 시라부에게 고시키는 망설이는 듯 하다 무언가 결심한 듯 허리를 약간 굽히며 소리쳤다. 

 

  “시라부 선배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시라부는 고시키를 멀뚱 바라보다 무심코 웃어버렸다. 다른 선배들이 보는 저가 저러하였을까. 시라부는 웃으며 고시키에게 말했다. 

 

  “그래, 너도 축하한다.”

 

  웃어보이는 시라부에 벙찐 고시키가 시라부가 간 후 잔뜩 흥분한 채로 친구들에게 시라부가 들었다면 험한말과 함께 조용히 하라는 핀잔을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마구 해댄 것은, 딱히 비밀로 하더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지 않을까. 

*)
  당신의 졸업식은 빨랐다. 당신과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졸업장을 받아들고 프로젝터에 상영되는 화면들을 보다가 당신에게 꽃다발을 쥐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당신을 마주하지 않았다. 관중석으로 돌아가 바보같이 덜덜 떨리던 손가락을 자책하며 아까의 당신을 회상하였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동급생들과 이야기하는 당신은 너무나 눈부셔서, 마치 닿을 수 없었던 그때 화면 안의 당신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하지만 팔 뻗어 충분히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나는데 당신은 이제 가버리는 것이라. 

 

  아니, 가는 것은 저 자신이였나

 

4)
  탕, 하고 울려퍼지는 공과 바닥의 마찰, 시큰하니 퍼지는 파스 냄새, 반사되어 생기는 빛의 흔적. 모든 것이 시라부가 있는 곳을 형용하였다. 이곳은 체육관이였고, 방금으로 하여 마지막 연습이 끝난 것이였다. 매니저가 건네는 하늘색 수건에 시라부는 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우시지마는 벌써 감독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선 문을 나서고 있었다. 닿을 수 있을까, 하고 씻지도 못한 채 우시지마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던 시라부는 갑작스레 문 앞에서 멈춰선 우시지마에 부딪혔다. 

  “무엇이지, 시라부.”

  “아...밖에서 말씀 드릴 수 있을까요.”

 

  그러하지.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시라부와 밖에 섰다. 시라부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입 안에서 유영하는 혀의 존재가 이렇게 무쓸모 하다는 것도, 선조가 만들어낸 언어는 이렇게나 비효율 적인 표현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아는 것이였다. 마지막에서 처음을 알아낸다, 이질적이고 모순된 말이였다. 우시지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다. 

  “시라부, 앞으로의 팀 구성은 너에게 달려있다. 넌 충분히 훌룡한 세터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눈물이 북받혀오르는 기분에 시라부는 붉은 눈가를 숨기려 눈을 감았다 뜨며 입술을 지분거리며 씹었다. 

  “넌 할 수 있어, 난 믿는다.”
  “부탁한다.“ 이어지는 우시지마의 뒷말에 시라부는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음을 느꼈다. 눈에서 흘러넘치는 것은 눈물인가, 아니면 우리의 반대에 있을 어느 수평선의 바다였던가. 모두의 기대보다도 당신의 기대는 무거웠다. 너무 특별한데도 동경만이 허락된 관계에 이처럼 울었던 날이 손을 꼬박 꼽는다. 우시지마상, 앞을는 없어요. 전 할 수 없고, 당신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거나 특별한 재능도 없이 당신만 보고 따라와서.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아래로 꾹꾹 삼켜내고서 시라부는 음절을 발음했다. 

  “우시지마상, 국가대표로서의 경기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거짓말 한방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거짓말 두방울

  “좋은 추억 감사했습니다.”

  거짓말, 셋방울?

  시라부는 우시지마에게 안겨 울었다. 당신은 굳세고 단단한 사람인데도 그 품은 부드럽고 따듯해서, 아프다. 아팠다. 

  감히 당신을 안으려 한 내가 아프다.

*)
  청춘이였다. 어른들은 열여덞의 조금은 험한말을 닮은 그 나이를 청춘(靑春), 인생의 푸른 봄, 한번밖에 없을 시간이라고 하곤 하였다. 공부를 하는 중학생의 시라부에게 친구들은 장난스레 지금을 즐기자며 제안하였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부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그 말을 듣는 빈도가 몇 번 늘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달라진 것 조차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언제나 달랐지만 그 끝엔 당신이 있었다. 내 청춘은 전부 너였다. 내 봄은 너로 색칠되어 있었고, 너를 담고 있었고, 네가 서있는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걸어가지 못할 그곳을 향해 우리는 낙원이라 하였나보다. 

  모든 게 끝났거나, 새로운 시작이였다. 앞을 향해 걸어갈 당신의 한참을 뒤에 선 나는 그 길을 따라 걷지 못할 것이였다. 아직도 꽃다발의 포장지가 주었던 그 매끈한 촉감을 나는 기억했다. 어떠한 꽃도 당신이 걸어갈 길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하진 못할 것이지만,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으리란 희망따위는 접어버린지 오래였지만 그 시작을 축하해주는 치기를 제가 부려보아도 될까요. 

 졸업 축하드립니다, 우시지마 선배. 



 

안녕하세요, 월간 우백 1호 참가자 사나입니다.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아 급하게 작성하여 퀄리티..에 자동으로 죄송해져 버리네요. 그래도 우시시라 좋아요! 우시시라 요소 엄청 적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많이 드셔주세요. 졸업 쓰고싶었는데 저는 어떻게던 절망적인 것 밖에 못써서 앞뒤 다 자르고 시라부 죽여버리는, 그래도 저는 즐거운 글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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