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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끝

김늑대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졸업식 날, 미야기 현에는 첫눈이 내렸다. 시라부 켄지로는 평생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차가운 눈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눈에서는, 어쩐지 눈물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첫사랑을 끝낼 때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경기를 보았을 때 시라부 켄지로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으나, 분명 시작은 그때 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강한 것에 대한 동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동경하던 이와 대등하게 서서 그와 교류하기 시작하자 어렵지 않게 그것이 사랑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첫 사랑이었고, 기나긴 사랑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지독하게도 사랑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보답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동경하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이를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끝이었다. 

 

  우시지마 선배. 기껏 가까이 다가갔건만 그는 또 다시 저만치 먼 곳으로 가버렸다. 이제는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다가갈 수 없는 곳이었다. 연단 위에 서있는 그는 체육복이 아닌 교복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화려한 꽃다발을 든 채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자리는 바로 저곳이었다. 사람들의 위에서,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 범인(凡人)은 감히 다가갈 수 없고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그곳이 바로 그의 자리였다. 유감스럽게도, 시라부 켄지로는 범인(凡人)이었다.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는 범인(凡人)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초인(超人)이었으니까. 잠시나마 초인(超人)의 곁에서 그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다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욕심을 내서는 안 되었다. 시라부 켄지로는 몇 번이고 그리 자신을 달래고 세뇌했으나 막상 그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자 처절하게 무너져 버렸다. 함께 하고 싶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대등하게 그의 곁에 서있고 싶었다. 그림자가 되어도 좋으니, 남들의 눈에 띄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그의 곁에 서있고 싶었다. 연모하는 이가 눈에 닿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사치라니 그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잔인한 법이었다. 

 

  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야.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문득 이쪽을 바라보자 시라부 켄지로는 설핏 웃어보였다. 너무도 먼데다 요란하게 터지는 플래시들 탓에 보이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시라부 켄지로는 웃어보였다. 어차피, 그가 자신을 쳐다볼 일은 없었다. 

 

 

  “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서두는 그답게 고지식하고도 진부한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저 말은 진심일 것이다. 넓은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남자의 목소리에 시라부 켄지로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는 저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그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게 있으며 그 특유의 단호함이 묻어나있는. 듣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신뢰감이 들게 하는 그 목소리. 저 목소리를 사랑했었다. 말이 많지 않은 그였기에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연설은 매우 짧았으나 시라부 켄지로는 그 짧은 시간마저 견디기가 힘들어 결국엔,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켄지로. 옆자리에 앉은 카와니시 타이치가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 말에 멈칫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체육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자꾸만 처음 그와 일대일로 대면하게 되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에는, 동경하던 이와 처음으로 마주 섰다는 생각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아니. 가까이에서 보았던 그가 너무도 빛나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가.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황홀한 나머지 단편적으로만 기억났다. 미친 듯이 뛰었던 심장과, 지나치게 빛이 났던 그의 모습. 잠시나마 맞잡았던 손. 그날, 시라부 켄지로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수를 했던 제 손만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시라토리자와에 오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후회마저 들었다. 차라리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으면. 다가갈 수 없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텐데. 만나게 된 것을. 죽도록 노력해서 간신히 얻은 만남을 후회하진 않았으나 너무도 아픈 나머지 조금은 원망하고 싶었다. 원망 정도라면 해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아픈데. 생각을 할수록 가슴이 아파오고 숨이 막혀와 시라부 켄지로는 결국 걷는 것을 멈추고 벽에 기대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 시라부. ”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성큼 뒤로 다가와 제 이름을 불렀다. 설마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그 자리에는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조금은 거친 숨을 내쉬며 서있었다. 엉망인 제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일까.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눈을 깜빡이는 그의 모습에 시라부 켄지로는 급히 제 얼굴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 선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

  한참을 운 탓에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다. 큼큼. 급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지만 그래도 변함이 없어서 시라부 켄지로는 반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애써 웃어보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네가 보이지 않기에 찾으러 왔다. ”

  “ 곧 가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눈에 뭐가 들어가는 바람에…. ”

 

  시라부 켄지로는 제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놓았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별 다른 말 없이 계속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조금은 부끄러워져 시라부 켄지로는 고개를 숙이고 제 발끝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보면 끝내 제 마음을 토해내 버릴 것 같았다. 우습게도 시라부 켄지로는 제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에게 부담을 남겨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제가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미안해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그의 마음에 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라부 켄지로는 평온함을 가장하며 제 마음을 숨기려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하는 듯 싶었다. 

 

 

 

  “ … 그런가. ”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눈치가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지금 제 앞에 서있는 후배가 제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사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연설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는 시라부 켄지로의 모습을 보고 쫓아온 것이었다. 연설이 끝난 뒤  저를 붙잡는 이들을 거절하며 인파를 뚫고 그를 찾으러 나섰다. 그를 찾기 위해 학원 이곳 저곳을 다 쏘다녔었다. 교실들부터 급식실, 강당 등등. 평소에 가지 않았던 소각장마저 갔으니 말 다 했다. 마지막으로 가본 체육관 뒤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를 발견했을 때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시라부는 울고 있어서.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시라부 켄지로는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다가가 그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었으나 발이 움직이지가 않았다. 왜 우는 것일까. 얼마나 이곳에서 울고 있었던 것일까. 시라부 켄지로의 어깨에는 소복히 눈이 쌓여 있기까지 했다. 추운데서 그렇게 오래 혼자 울고 있었던 건가. 그 생각에 미치자 괜히 속이 상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그제서야 그를 불러 제가 있음을 알렸다. 시라부 켄지로에 한해서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항상 그랬다.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건만 괜히 다른 이들과 친밀해 보일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제게 다가오려 노력하는 것을 볼 때는 사랑스러움마저 들었다. 힘들어 하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그거, 사랑 아니야? 언젠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물론 대상이 누구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텐도 사토리가 했던 말이었다. 그런가. 사랑인가. 그제서야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시라부 켄지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 그래. 이제는 괜찮나? ”

  하지만 그게 다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고,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고시키 츠토무 라던가, 카와니시 타이치와 유독 친밀한 모습을 볼 때면 간혹 묘한 감정이 들었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다 괜찮으니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신경 쓰였으나 그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괜찮은 거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한 거겠지.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그리 물었다. 

 

 

  “ 네. 괜찮습니다. ”

  시라부 켄지로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쏟아지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 그럼 가지. 다들 기다리고 있다. ”

  다들 기다리고 있다. 그 말을 하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뒤를 돌았다. 그 뒷모습에, 다들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시라부 켄지로는 이것이 둘이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몸이 먼저 나갔다. 시라부 켄지로는 저도 모르게 막 걸음을 옮기려던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소매를 붙잡았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그것에 고개를 돌려 시라부 켄지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곧 울 것 만 같아서.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몸을 완전히 돌려 다시 그를 마주하였다. 손을 뻗어 눈물로 범벅된 뺨을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입을 열었다. 

 

  “ 왜 그러지? ” 

  지독히도 무심해 보이는 말투였으나 그는 원래 그런 남자였다. 

  “ ……. ” 

  시라부 켄지로는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잡긴 잡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떡하지? 좋아한다고 말하나? 그러면 그 다음은? 불편함으로 남아 어색한 사이로 헤어지는 건가? 그 생각에 까지 미치니 소매를 잡은 손이 떨렸다. 소매를 놓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선후배 사이로 마무리 짓는 거야. 시라부 켄지로는 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속으로 그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려던 순간,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손이 시라부 켄지로의 뺨을 덮었다. 

  “ 시라부. 울지 마라. ”

  시라부 켄지로는 그제서야 제가 다시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울음을 그쳐야 하는데 한번 터진 울음은 쉽사리 멈추질 않아서, 소매를 급히 놓고 눈물을 훔쳐 보았으나 결국에는 그마저도 포기해야했다. 저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뺨을 어루만지는 손이 너무도 다정해서. 시라부 켄지로는 결국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품에서 엉엉 울며 제 마음을 토로했다. 

 

 

  “ 좋아해요 선배. 예전부터, 쭉. 좋아해 왔어요.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우시지마 선배. ”

  “ ? 나도 좋아하고 있다. 시라부. ”

  “ 네? ”

  “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사랑하고 있다.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에 시라부 켄지로는 울던 것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고, 우시지마 와카토시 또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상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 저를, 좋아하신다구요? ”

  “ 그래. ”

  “ 그, 정말로요? 아니. 그. 어떤 식으로? ”

  “ 너를 보면 기분이 좋고, 자주 생각이 난다. 다른 이들과 말을 할 때면 신경이 쓰이고 자꾸만 네게로 시선이 간다. 다른 이들에겐 그러지 않고 너에게만 이런 감정을 느끼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만. 아닌가? ”

  “ … 그럼 왜 말을 안 하셨어요?! ” 

  “ ?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니까. ”

  “ 아. ”

 

 

아. 그렇구나. 그 말에 시라부 켄지로는 단번에 납득하고 말았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남자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듯 바라보는 얼굴이 지독히도 사랑스러워서 시라부 켄지로는 결국 웃고야 말았다. 웃다 우는 후배의 상태가 걱정되기라도 하는지 묘한 표정을 짓는 그를 끌어안고, 시라부 켄지로는 웃었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으나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른 눈물이었다. 좋아해요. 선배.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걱정을 그만두고 작게 웃으며 제 품에 안긴 시라부 켄지로를 끌어안았다. 나도 좋아한다. 좋아해요. 그래.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시라부 켄지로의 기나긴 짝사랑이,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첫 사랑이 종지부를 맺었다. 하늘에서는 그 해 첫 눈이 하늘 하늘 떨어지고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시라부 켄지로는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끝이 뭔가 급 해피엔딩한 느낌이네요 ㅠㅠㅠㅠㅠ 항상 앵슷이나 열린결말만 쓰다가 처음으로 해피엔딩을 내보니 어색하고 많이 부족한 느낌이라 부끄럽습니다. 시라부 사랑해! 우시지마도 사랑해! 우시시라 백년만년 행쇼했으면 좋곘고 월간 우백 사랑합니다... 월간우백도 백년만년 흥하길 바랍니다 :3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시라부 사랑해!!! 

​* 월간 우백의 모든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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