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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ture,

Perfume

박영희

1.

  울음을 삼킨다. 속으로 울컥 밀려들어오는 감각은 새벽을 설칠 정도로 퍼렇게 날이 선 채 이미 긁어낸 자국을 위로 상처를 하나 둘 덧새긴다. 달갑지 않았다, 역시. 시라부는 곧장 품에 안겨들고 싶은 머리를 차게 식혔다.

 


2.

  서곡은 신이 났던가. 시라부는 물음을 삼켜낸다. 사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덧씌운 노래라고 할지언정 변하는 건 없었다. 이 무대의 결말은 변하지 않는다. 까닭이라고 굳이 거창한 이름을 붙여 부연 설명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이미 완성된 대본은 큰 이유가 아니고서야 불변한다. 그러니 이것은 결국 암기와의 씨름이다. 대본에 제시된 노래와 춤과 대사와 시선 처리의 집합체. 그들은 한 시간이 될 법한 무대를 위하여 며칠을 고민하였지. 아니, 그것은 신경을 쓸 부분이 아니다. 시라부는 아린 눈두덩을 엄지로 꽤 힘을 실어 짓눌렀다. 익숙해지지 않는 통각이었다. 몇 년이나 됐으니 익숙해질 법한데도 감각은 무뎌질 때쯤 급히 찾아왔다. 찬 물에 꽤 담갔던 손이 식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젖은 손을 바지춤에 엉성하게 눌러 닦고, 시야를 단단히 가린 눈꺼풀 위로 얹는다. 찬 기운에 온 몸이 전율했다.

  아, 시라부.

  입술은 여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주 망각하는 듯했다. 습관이 되어 물어뜯는 얄팍한 살점들이 나가떨어진다. 기어코 혈이 새거든 그제야 행동을 자각하고 잠깐이나마 불규칙성을 띄는, 불안감을 나타내던 증세를 다른 기관으로 옮겼다. 가장 흔하게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시선이 흔들리고, 목소리에 떨림이 실린다. 예외는 있다. 그러나 시라부는 예외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잘게 물어뜯기는 시라부의 입술을 결국 엄지로 훑어 내고서야 그의 연갈빛 눈동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마주친 눈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삼켜진 눈이다. 저것은 어딘가 박아대고 뜯겨 너덜해진 채 겨우 삶을 연명하는 죽은 눈깔이었다. 허망한 시선은 우시지마의 손길에서야 되살아난다. 그토록 바라던 눈빛은 마주 보기만 하면 잃어버리게끔 만든다. 말 하는 법도, 생각을 하는 법도. 그의 파멸에 동조하듯.


3.

  침묵은 두려움이 너무 멀리 나아가 비롯되는 것이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고요하던 곳이 단숨에 파한다. 모든 신경이 화자로 곤두세워져 괜한 소름이 오소소 돋곤 하는 게. 그러한 감각은 전멸하는 듯했다. 꼭 환멸과 같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애처로이 발발 떨리는 손길과 함께 시라부는 이 침묵을 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선 자신을 돌려 세운 것도 우시지마였고. 그에게 할 말은 없다. 요 두 달간 그랬듯 시라부는 그에게 화두 얹을 거리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 곧 우시지마는 손을 뻗었다. 손아귀에 한가득 붙잡힌 손목이 얇다. 불거진 뼈가 도드라져 선하게 쥐인다. 입맛이 없는 듯했다. 그 사실마저 시라부는 언급 않았다. 오직 우시지마 스스로가 뒤늦게 눈치 챈 것이다. 눈에 띄게 몸을 떠는 저 탁한 눈동자를 가진,

  …분명, 처음에는 맑았었는데.

  그러고 보면 처음이라는 게, 대체 언제쯤이었더라.


4.

  몇 번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것에는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우시지마는 도어락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센서 덕에 불을 다 내려 까맣던 집 안의 어둠은 붉은 계열의 색을 입었다. …다녀오셨어요, 우시지마 상. 시라부는 답 없는 중얼임을 밭아낸다. 통각은 여전하다. 한참을 물수건에 제 눈두덩을 맡기던 차였다. 켄지로, 불은 켜 두지 그래. 우시지마는 당신의 입을 뻐끔거렸다. 두 입술이 묵직하게 닫기자마자 꽤 오래 머물렀던 현관등이 빛을 잃었다.

  부엌으로 들어간 시라부는 뒤를 돌아봤다. 하이라이스, 괜찮죠. 담담하고 느릿하게 이은 목소리가 우시지마의 발목을 옥죈다. 그에 상응하듯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시라부는 다시 제 몸을 부엌에 실었다. …좋아한다, 켄지로. 낮은 목소리가 둘뿐인 적막을 깨뜨린다. 그 무뚝뚝한 말투에 설레어할 이는 아무도 없다. 시라부는 뒤돈 채였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는 소리. 여전히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돌아보지 않는다.


5.

 

  지독한 향이다. 시라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각이 서서히 죽어갈 무렵 더 훤해진 건 후각이었다. 그 무엇보다 예민했다. 코끝을 찌르는 분내. 실시간 방송으로 이번 시즌 소감과 다음 시즌에 관한 인터뷰를 하더니, 아마 그곳에서 묻히고 돌아온 인터뷰어의 향이리라. 이제는 무뎌진다. 요컨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그에게 스며 돌아오는 데 있어서는. 이것은 그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이자 냉소적인 반응의 공존이었다.

 

  입술이 벌어진다. 꾹 다물렸던 것이 틈을 빚어낸다. 목소리는 더 이상 없다. 내 세계는 새벽의 산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우시지마 상. 그 날 시라부는 그의 낙담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시지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로맨틱했으며 떠맡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시라부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속삭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기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당신은 나를 응당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쓰게 삼켜둔 말. 그는 상처 받을까.

  우시지마 상.
  내리 생각해봐도, 역시 나는 당신에 어울리지 않는 걸요.


6.

  씹어 문 입술이 달다. 씹어 문 혀가 쓰라렸다. 씹어 문 손가락 끝이…. 혈향이 진득하게 오른다. 시라부는 적막한 방 안을 둘러본다. 이런 모양새로, 아무도 없던 곳만이 고요했던 때가 있었는데. 기지개를 켜고 거실로 나아간다. 우시지마는 새벽 일찍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서 금방 화장실에서 기어 나온다. 수건으로 두른 몸이 고등학교 때에 보았던 것보다 잡혀 있었다. 볼을 붉힐 여유는 없다. 시라부는 샤워코롱의 향을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이마신다.

  우시지마 상은, 꽤 단 향이 어울리네요.

  저는 비린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시라부는 외출을 강행한다. 따라 나서려는 우시지마를 앉혀두고 나서야 짐을 챙겨 나선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향기를 파는 곳. 듬직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어울리는 향, 있을까요.

 


7.

 

  여러 향수들이 부닥친다. 봉투를 들었기에 느꼈을 뿐이다. 금세 우시지마는 자리를 비웠다. 당신에게 정말이지 향수가 잘 어울리는 건, 사실. 붙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야. 편지는 마침표를 찍는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저 어쩌다 떠올리기만 해주세요.

 

  그는 답지 않게 단 향이 어울렸다. 생선보다 훨씬 비린내 투성이인 내게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었다.

 

  편지는 끝이 났다. 우시지마는 울지 않았다. 손에 쥔 편지를 구겨내지도 않는다. 시라부가 얹은 향수병을 허전한 책상 위로 나열했다. 들쑥날쑥한 크기. 그와 가장 닮은 분홍빛 액체. 우시지마는 그것을 허공으로 뿌려본다. 이 색은 꼭 네 향과 일치한데. 비린내는 자신이다. 적당한 까닭은 없다. 시라부, 네가 그렇게 생각했듯.

 

 

미숙하지만 월간 우시시라 1월 호 처음으로 참가할 수 있게 돼서 정말이지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우시시라 좋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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