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USSR
The Ballad of me and my brain
김시란
*센티넬끼리의 각인도 세포를 통한 인공각인으로 가능하다는 설정
*각인 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이 여과없이 전달됨.
*센티넬각인시 서로의 파장이나 주파수를 듣거나 느낄 수 있다.
금싸라기 같은 햇빛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네 머리를 싸, 하고 훑었다. 그 뒤로 조금은 마른듯한 등골이 여실히 드러나는 니트의 교차점, 대충 접어 뭉친 소매의 끝. 맞아, 너는 가을이면 꺼내입곤 하는 그 흰니트를 참 좋아했다. 온 천지에 따뜻한 노랑이 펼쳐지는 가을의 파랑 밑의 온통하얀 너를 볼때면 나는 넋이 나가곤 한다. 동그란 이마와 코, 도자기같은 턱을 내려오면 각이 진 어깨에서 떨어지는 얇지만 굳건한 팔과 그아래로 쭉뻗은 다리.
"우시지마상, 뭘 그렇게 보고계세요?"
너는 나에게 다가온다. 공중에서 눈이 얽히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꿈만같아서, 나는 으스러질정도로 있는 힘껏 너의 마른 어깨를 끌어안았다. 목 언저리께에 닿는 네 숨결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담고 또 담았다.
*
"..지마, 우시지마! 일어나!"
"... 켄지로,"
"꿈얘기 할 시간도 없다. 빨리 준비하고 나와."
멍하니 눈만 꿈뻑이는 와카토시의 어깨를 세게 치고 나가는 레온의 뒷모습이 꽤 지쳐보였다. 탁한 누런색 조명사이로 굵은 호선을 그리는 어깨가 퍽 낯설었다.
이해관계 대립의 시대. 세상은 날마다 바뀌었고 우시지마가 속한 A국을 포함한 B국, 두 나라의 정부들은 더 끔찍해져만 갔다. 센터에 소속된 센티넬들과 가이드를 능력별로 전방에 배치하고 이 미친 것 같은 전쟁놀음을 꾸역꾸역 이어갔다.
센티넬과 센티넬이었던 와카토시와 켄지로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주파수를 이용하여 폭발시키는 S급 공격형 센티넬인 와카토시는 최전방에, 작게나마 파동을 통해 치료를 할 수 있는 B급 수비형 센티넬인 시라부는 후방의 수도에서 군의관으로 배치되어 갈라졌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센티넬들끼리의 세포를 통한 인공각인은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의 각인보단 약했다. 게다가 몸이 떨어져있으니 밀려 들어오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왼쪽 귀에 달린 피어스를 매만졌다. 각인이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을때부터 시작된 습관이었고 그와 동시에 제발 무슨일이 없길 바라는 바람이었다. 그런 와카토시를 비웃듯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켄지로의 파장이 줄어들어갔다.
단발마의 총성이 울리더니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밝게 타는 붉은 궤도가 하늘을 아름답게도 수놓았다. 온 몸을 검정에 담근 것 처럼 깜깜한 옷을 꿰어입고 잔뜩얼어 딱딱하기만한 건물의 땅바닥을 낮은 포복자세로 전진하다가 앞에 보이는 적의 건물의 입구에서 가만히 신호를 기다린다. 붉은 궤도의 끝이 보일때부터 하나, 둘, 셋.
펑, 하고 큰소리를 내며 터진다. 잠깐이나마 삐-하는 고요한 정적속에 거짓말처럼 흩날리는 잔해물들 속에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덕분에 끔찍한 현장을 뒤집어 쓴 와카토시는 얼굴로 빗발치는 핏방울들을 거칠게 쓸었다. 수백, 수천번을 해온 것이라지만 절대 익숙해지지않는 풍경을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언뜻 붉게 타오르는 새벽에 비친 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피가 굳은 몸 여기저기를 제외하고 그 어떤 티가 나지않았다. 까만 군복이 짙게 깔린 감정들을 다 덮어버린 것만 같아서 와카토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하고 떨었다.
"...."
까만 군복이 먹어버린 건 감정들뿐만이 아니었다.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시라부 켄지로가.
"캡틴. 안되는 것 쯤은 알고 있지?"
"..."
"우시지마."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저의 성에 와카토시는 아래로 향했던 눈을 다시 고쳐떴다. 굳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레온의 얼굴이 그 어느때보다 단호했다. 네 사정이 이해가 가지만 어찌됐든 안돼. 산사람은 살아야지.
맞다. 산사람은 어찌되었던 살아야한다. 아니, 살아남아야한다. 그것이 센티넬의 이유였으며 감정따위는 적어도 센티넬에게 있어서 부가적인 것이었다. 혹여나 그것이 각인된 파트너와의 그 어떤 무언가라도. 총성이 빗발치는 무언의 전쟁통속에서 한명의 목숨이라도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와카토시가 이끄는 팀처럼 최전방에 있는 센티넬은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카토시는 승산이 거의 없는 버티기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있다면 아마도 거의 0%가까운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우시지마, 정신차려."
"산다고 했지."
"그래."
"그래서 그래."
레온은 머리를 뒤적였다. 와카토시는 고집이 강했다. 풀처럼 유연한 구석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고 언제나 이렇게 단단하고 강직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아마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가도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죽던가 살아남던가 할때까지 입을 열지않을 사람이었다. 그 성품을 높히 인정받아 정부에서도 와카토시를 꽤 우위에 뒀다. 문제는 그게 와카토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해는 갔다.
켄지로는 아무도없던 와카토시의 '아무'가 된 사람이다.
어린나이에 발현 된 센티넬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을 만든후에 센터로 '소환'되었기 때문에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그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주파수나 파장이 크면클수록 알게 모르게 따돌려져서 계속 겉돌았다. 와카토시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나 센터에서는 오히려 그걸 더 권장하는 편이었다. 잔인하게도. 모두의 두려움으로 촘촘하게 짜여진 거짓된 우월함이라는 망토를 억지로 뒤집어 쓴 와카토시는 오롯이 혼자였다.
어쨌든 켄지로는 상당히 어린시절부터 조그마한 장벽에 둘러쌓여서 두려움과 경계심만 가득하던 와카토시의 뺨을 거세게 걷어찼다. 사람이 목숨귀한줄알아야지. 어쩜 그래요. 죽으려고 환장한 사람처럼.
켄지로는 전투에 나갔다가 흠뻑 다쳐서 돌아온 와카토시를 '죽으려고 환장한 사람', '목숨이 서너개인사람'이라고 부르곤했다. 어떻게 부르던 와카토시는 잠자코있다가 치료가 끝났을때가 되어서야 그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살려고 한다.'고 툭 내뱉었다.
그때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켄지로는 와카토시의 생명의 연장선을 쥐고 있었다. 동시에 사망선 또한 쥐고있다. 그런 켄지로를 잃는것이 와카토시에게는 죽음보다 무서우리라.
"레온."
"왜."
"반란군이 되면, 여기에 남아있을 수 있지 않나."
와카토시는 죽음에 대한 무서움이 아니라, 켄지로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보였다.
"이 시간부로 전 캡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반란군이다."
"..."
"고로 이후의 캡틴은 나 오히라 레온이 취하며, 피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최후의 격전지에 남겨놓고 떠난다."
레온의 굵직한 목소리가 막사 안을 울렸다. 혼탁한 공기만 가득한 막사엔 오랜만에 모든 대원들이 북적북적하게 모여있었다.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한 공간에 모일일이 전혀 없었던 대원들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단 두려움과 당혹스러움, 감출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개중에는 화가머리끝까지 치민 얼굴도 있었다.
겸허히 수용하는 와카토시를 뒤로한 채 검은 군장을 짊어진 채 나가는 행렬의 끝에는 와카토시의 가슴께에서 빛나던 훈장을 이어받은 레온이 와카토시의 등을 세게 쳤다. 와카토시는 구호를 맞춰 앞서 나가는 대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 캡틴에 대한 예우라며 챙겨준 제 몫으로 총알 하나만 장전이 되어있는 리볼버를 만지작 거리다 망설임 없이 하늘을 향해 쏴버렸다. 켄지로를 두고 편하게 죽을 마음 따윈 없었다. 자신이 없는 세상에 켄지로 하나만 덜렁 남겨두고 가긴 싫었다. 켄지로에게 자신은 한없이 이기적이었다. 더이상 이기적이긴 싫었다.
시간이 침착함이 와카토시를 덮쳐왔다.
'반란군'딱지를 달고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마음이 편했다. 크고작은 수많은 전쟁에 참가하면서 이만큼 편하게 마음을 먹었을 때가 없었다. 오로지 켄지로에 대한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은 켄지로에게 귀속되어있는 느낌이 나쁘지않았다. 반대쪽에서 울리는 총성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지는 족족 주파수를 올렸다. 총성은 곧 고통의 아우성으로 가득찼다.
켄지로가 봤다면 비 인간적이니 뭐니 뭐라고 했음이 분명했겠지만-, 지금의 와카토시에겐 켄지로말곤 보이는게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던 살아서 켄지로와 함께 어디로든 떠날 생각에 부풀어 올랐다. 어디에도 속해있지않은 유토피아를 향해 갈것이다. 완전한 두 사람만의, 온전히 둘만 남아있는 지구상의 그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던 , 그를 무섭게 하는 켄지로의 부재따윈 없을것이다.
밤을 닮은 군복이 다시한번 모든것을 삼켰다. 이번엔 얼마만큼의 피를 삼켰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까마득한 언젠가의 기시감이 또다시 다가왔지만 와카토시는 그걸 아무렇게도 않게 목구멍의 저끝으로 삼켰다. 지독한 맛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푸슬푸슬 웃어보였다. 어떠한 무언가도 들어가있지 않은, 실로 오랜만의 건조함이었고 질척한 그리움을 담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켄지로를 볼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주는 그 어떤 흥분이 그의 피를 하여금 뜨거워 지게 했다.
켄지로는 죽었을까?
아니, 절대로 살아서 서로의 마지막이었던 이곳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와카토시는 까맣게 다 타버린 검정을 잡고 동쪽끝에서 부터 희게 밝아오는 여명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았다. 곧 새하얘진 시야 안에는 어제의 끔찍함이 여실히 널려있었다.
검게 흘러갔던 시간이 아릇하게만 느껴졌다. 아스라이 져가는 바람의 소리, 더워지는 건조함의 소리, 수많은 소리가 귓전을 웅웅대기만한다. 그 수많은 소리들사이에 네가 들리기만을 오늘도 기다린다.
너는 내가 기다리는 최후의 사람이다. 몸 안의 한 구석에서 아릿하게 저려오는 무언가의 원인이고 찌르르하게 울려오는 무언가의 이유다.
나에게 너는 그런 사람이다.
-fin.
안녕하세요, 우백으로 봽게 된 김 시란입니다. 언젠가 우시지마의 짙은 기다림의 감정선을 그리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에 함께 하게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