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USSR
시선의 끝 (完)
말랑쀼
전편을 읽으셔야 전개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전편 링크: https://keeponly1ove.wixsite.com/monthly110-2/blank-12
마침 자리가 하나 남아있어 운 좋게 본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팝콘도 바삭바삭했고. 새파랗게 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아, 그만두니까 이렇게 편한데. 한동안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내를 걷다가, 시라부는 문득 자신이 배구용품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내 무표정하던 시라부의 얼굴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한심해. 그만둔다고 해 놓고, 결국은 이렇게 또... 시라부는 억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한 발, 두 발, 걸음은 점점 빨라지다가 이내 달음질이 된다.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고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널브러져서 한숨을 내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날씨도 좋았다. 영화도 재미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즐겁지 않아. 기쁘지도 않아.
***
문득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 생각해보니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해서 일단은 밥을 먹기로 한다. 시라부는 자주 가던 가게에 들러 라멘을 시켰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서는, 별 생각 없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가 징징징징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 알림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집어든다. 부재중 전화 두 통, 문자 세 통. 아, 귀찮게. 누구야.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통화기록부터 확인해보니 우시지마였다. 시라부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다. 뭐야 이거? 이 사람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 답지않게 손까지 덜덜 떨면서 메세지를 확인하려는데 전화가 다시 울린다. 역시나 우시지마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소리를 끄고 가방에 집어넣어버린다. 무슨 할 말이 남았다고. 밥이나 먹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면을 집어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역시, 이 집은 차슈가 맛있어서 좋아, 하며 국물을 떠먹고 있을 때였다. 시라부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라부,
깡마른 어깨가 흠칫 떨린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시라부의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시지마는 우뚝 서서 시라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종업원이 다가와 손님, 자리는 저 쪽에도 있습니다, 하고 시라부를 도우려 했으나 우시지마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시라부의 앞에 앉았다. 하야시 라이스 하나요. 종업원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시라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우시지마를 쳐다본다. 뭐야, 이 사람 왜 이러는데. 진동하는 꽃향기에 짜증이 치고 올라와 퉁명스레 묻는다.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우시지마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긴 침묵 뒤에 그렇다. 묵직한 대답이 떨어졌지만 시라부는 못 들은 척 국물을 마신다. 그러다, 문득,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찾아왔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긴 그렇게 유명한 가게도 아닌데. 학교에서부터 쫓아온 거야? 설마? 무거운 돌이 뱃속에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쿵쿵 세차게 뛰는 소리가 귀에 울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물음표 백만 개가 동시에 떠오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우시지마를 바라본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우시지마는 말을 골라내려는 듯 망설이다가 냄새로 알았다, 고 이야기한다. 사실이었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시라부를 쫓아가려 체육관을 나섰다. 시라부는 전화도 문자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멈춘 향기의 흔적으로 버스를 탔다는 것을 알았고. 버스를 타고 갈 만한 곳은 시내밖에 없다고 생각해 자신도 버스를 탔다. 아니나 다를까, 시내의 정류장에 다시 생긴 자취는 영화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앞에서 기다리니 시라부가 나왔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시라부를 부르려던 우시지마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후배의 표정에 멈칫하다가 손을 내렸다. 언제나 꼿꼿이 펴져 있던 어깨는 근심걱정을 잔뜩 짊어진 듯 축 처져 있었다.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아서, 제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 말을 걸까 고민하며 시라부의 뒤를 졸졸 쫓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 리 없는 시라부의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재미 없습니다. 장난은 그만두시고 밥이나 드세요. 식습니다. 단칼에 잘라버리고는 다시 라멘그릇으로 시선을 옯긴다. 방금 전까지 먹던 음식인데. 고무줄을 씹는 것마냥 맛이 없었다. 결국 두 입도 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하며 일어나는 시라부를 우시지마가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이었다. 잠깐만. 잠깐만 내게 시간을 주면 안 되나, 시라부? 묻는 말에, 시라부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그래진 눈으로 곤란한 듯 저를 바라보고 있는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고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밥부터 드시고,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죠. 우시지마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카페로 가면서도 우시지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불편한 기분에 아랫배가 더부룩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욕지기가 절로 치밀었다. 누구를 향한 욕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아마 우시지마를 향한 것도, 저를 향한 것도 아닐 터였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을 뿐. 그게 다였다. 시라부가 마른세수를 한다.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눈 앞에서 사라져 주겠다는데. 선배, 하고 불러봐도 묵묵부답. 그저 맡고 싶지 않았던 꽃향기만 강하게 풍겨와 시라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 했으나, 우시지마는 못 들은 척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초코라떼를 내밀었다. 시라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휘핑크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데도 어쩐지 우시지마가 저를 보며 표정을 살피는 것이 싫지 않아서, 시라부는 컵을 집어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우시지마는 어째서인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대답은 평온했지만 컵을 든 손이 떨린다. 결국 답답해진 시라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은, 뭡니까. 우시지마는 말이 없었다. 뱃속에서 돌이 굴러떨어지고 있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붙잡기는 했는데, 그게, 이상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언제나 그래왔듯 온 힘을 다해 직진하기로 했다. 말을 꾸며내고 돌려 말하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었기에.
***
좋아한다, 시라부.
느닷없는데다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시라부는 라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 분명 일본어인데.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들은 기분이었다. 우시지마에게서 풍겨나오는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숨을 쉬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지금 들은 그 말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고 있던 심장이 북소리를 내며 튀어나올 듯 뛰기 시작했다. 우시지마가 다시 입을 연다.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심장 뛰는 소리에 가려 온통 부옇게 흩어지는 바람에 들을 수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가슴을 퍽퍽 쳐가며 연달아 기침을 뱉어내는 시라부를 걱정스레 쳐다본다. 시라부, 괜찮은 건가. 손을 내밀었으나 시라부는 경계하며 쳐냈다. 손 대지 마세요. 날이 선 목소리에 흠칫 놀란 우시지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공중에 머물던 손을 내렸다. 그 모든 행동들이 시라부의 온 감각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귓가에 울리는 고동 때문에, 놀란 듯 저를 쳐다보는 우시지마의 눈 때문에, 그 향기 때문에, 시라부는 어지러웠다. 어지럽다 정도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 불쾌함과 쾌감이 묘하게 뒤섞인 기분이었다. 기침이 멎은 뒤에도 한참 머리를 짚고 있던 시라부는 우시지마가 다시 시라부, 정말 괜찮은 건가, 하고 걱정스레 묻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우시지마를 바라본다. 괜찮습니다. 우시지마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웠으나, 그보다 그 향수 냄새 좀 어떻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머리 아픈데. 라는 시라부의 말이 튀어나오자 의아함이 둥실 떠오른다. 향수는 뿌리지 않았다. 이상하군. 의아해하는 우시지마를 보며 시라부도 혼란에 빠졌다. 그럼, 그 꽃냄새는...? 흔들리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순간 저를 쳐다보는 우직한 시선과 맞닿았다. 잠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암녹색 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겁이 덜컥 치밀어올랐다. 목을 졸라오는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라부는 벌떡 일어나 카페 밖으로 도망쳤다. 우시지마와 그를 감싼 붉은 향기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내달린다.
***
끊임없이 운동을 해 와서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대 타이틀을 단 우시지마의 괴물같은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시라부는 얼마 못 가서 저를 따라잡은 우시지마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왜 따라오시는데요! 왜요! 무슨 할 말이 남았다고! 왜! 그만두겠다는데 왜 그래요!
우시지마는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시라부를 바라봤다. 읽을 수는 없지만, 흔들림 없이 확신에 가득찬 눈이었다.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당신은 항상 뭐가 그리도 명쾌해. 시라부는 부들부들 떨며 그 눈을 노려봤다. 적의에 가득한 시선을 받던 우시지마는, 잠시 그 눈을 바라보다가 한숨처럼 내뱉는다. 그렇지만 너는, 지금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단 말이다. 씩씩대던 시라부가 정곡을 찔린 듯 멈칫했다. 우시지마의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조금은 애타는 듯한 표정으로, 절박한 목소리로, 도망가지 마, 시라부. 내게서 도망가지 마라, 고 한다. 덩달아 붉어지는 얼굴을 숨기려 시라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옆에 오지 말라고, 꺼지랄 땐 언제고. 두들겨 팰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러시면 어쩌라구요. 내가 뭐, 바보처럼 헤벌레거리면서 저도 좋아한다고 말해드리기라도 해야 합니까? 왜요, 제가 선배 좋아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동하셨습니까? 한 번 해드릴까요? 쏘아붙이는 시라부의 말에도, 우시지마는 그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원망이 가득 담긴 눈이 우시지마의 눈동자에 비쳤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다.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처음 널 봤을 때부터 네가 자꾸 신경쓰였어. 네가, 네 냄새가, 자꾸 내 주변을 맴돌아서, 내 정신을 온통 흩뜨려놓았다. 자꾸 내 시선에 네가 걸렸어. 무슨 짓을 해봐도 항상 내 시선은 너를 향해서, 답답했다. 처음엔 자꾸 네게 휘둘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게 모질게 대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관심이고 호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단 말이야.
시라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라부가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우시지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네게서 나던 라임향이 네 센트라는 걸 알았을 때, 그래서 네가 내 운명의.. 상대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너무 기뻤어. 우시지마의 눈은 진지했다. 이 눈을 알아. 거짓말이 아니야. 밀려드는 행복감이 가슴을 빠듯이 채웠으나, 이내 시라부는 너무 서러워졌다. 좋아하는데, 그런데 왜, 왜?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타이치한테는 또 왜? 시라부의 목소리에 물기가 다시 스며든다. 우시지마는 풀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비겁하고 치졸했다는 것은 알고 있어. 네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것도. 모두 미안하다. 그치만 나는 네가 카와니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그게, 너무 화가 났다. 시라부는 이제 서럽고 당황스럽다 못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먹을 들어 우시지마의 가슴을 마구 내리친다. 왜요?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선배 좋아하는 거 다 알았을 거에요. 타이치가 세미 선배랑 사귀는 것도 부원들 다 알아요. 그걸 어떻게 몰라? 어떻게 내가... 진짜 바보에요? 눈치를 하야시라이스에 말아서 같이 먹었어요? 어때요, 맛있던가요? 시라부의 날 선 질책에 우시지마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꺼낸다. 그, 처음 너를 본 순간에도, 네 센트는 개방되어 있었으니까.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리며 퉁명스레 내뱉는다. ...우시지마 상,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으니까요. 우시지마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잔뜩 들뜬 얼굴로 시라부의 손을 잡는다. 시라부, 지금 그 말.... 시끄러워요. 말 하지 마세요. 짜증나니까.
평소의 깍듯한 모습은 간데없고 성질난 고양이마냥 툴툴거리는 모습에 우시지마는 사실 놀랐다. 아니다. 놀랐다기보다는, 귀여웠다. 사랑스러웠고. 시라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빼려고 하는걸 꽉 붙잡고, 우시지마는 입을 연다. 시라부,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줘. 시라부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거절당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쿵 떨어져내린 우시지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시라부를 부른다. 시라부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홱 돌리며 우시지마를 바라본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노려보면서, 선배 애인 있는 거 아니었어요? 하고 부루퉁하게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시지마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툭 내뱉는다. 애인 같은 거, 없는데. 시라부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묻는다. 향수 냄새, 무척 진하게 나는데. 애인한테 선물받은 거 아닙니까? 우시지마는 이 뜻모를 질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물음표만 띄우고 있었다. 아까부터 도대체 왜 자꾸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인도 없고 향수도 안 뿌렸다. 시라부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거 정말 이상하네요, 하고 이야기하다가 우시지마와 시라부는 문득 서로를 마주본다.
행동은 우시지마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조그만 몸을 꽉 끌어안고,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달콤한 향이 나는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는다. 시라부의 연두색 향기가 우시지마의 코끝에서 팡팡 터진다.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라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좋아해, 좋아한다, 시라부. 이 한 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지 모른다. 놓치면 날아갈 것만 같아 우시지마는 시라부를 안은 팔에 힘을 준다. 선배, 우시지마 상, 숨 막혀요, 잠깐만....! 제 등을 퍽퍽 때리며 버둥거리는 시라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우시지마는 팔에 힘을 풀고 시라부를 놓아주었다. 무슨 짓이십니까. 이거 추행이잖아요. 시라부가 대들었으나 우시지마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래서, 싫냐고 물었다. 나는 좋았는데. 나는 네가, 너무 좋은데.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얼굴을 토마토마냥 붉게 물들인 시라부는 대답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시라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물었다. 다시 안아줘도 되는 건가, 시라부? 안 돼요! 시라부가 한 발짝 물러났다. 물음표를 띄우고 저를 바라보는 우시지마에게 잔뜩 경계하며 말한다. 선배가 제 그.. 운명의 상대인지 뭔지라는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맞다니까. 그리고 나는 널 좋아해. 많이. 말하는 우시지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런데, 선배가 다시 저를 때리거나 하지 않을 거란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뼈가 있는 질문에, 우시지마는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있다가 그렇지만 그건 오해였고, 하며 변명하려 했지만 시라부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오해든 뭐든 선배가 다시 안 그런다는 걸 제가 어떻게 믿냐구요. 우시지마는 한참 고민하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풀죽은 목소리로 믿어줘, 라고 한다. 믿어줘, 시라부. 다시는 네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거다. 다시 네게 손찌검을 하면 내가 배구를 그만두겠어. 시라부는 간을 보듯 인상을 찌푸리며 우시지마의 표정을 살피다가-좋아요. 약속한 겁니다-한숨을 내쉬며 결국 우시지마를 받아들인다. 긍정의 답을 받아든 우시지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시라부가 다시 입을 떼기도 전에 우시지마가 시라부에게 흘러내리듯 안겨들었다. 시라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올려 제게 안긴 대형견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제 주위 사람들한테도, 함부로 대하면 안 돼요. 알았다. 다시 그러면 선배 안 볼 겁니다. 약속하지.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저 구속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사생활은 존중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전화랑 문자 아무때나 하는 거, 별로입니다. 우시지마는 한참 있다가 툴툴거리며 참고하겠다고 한다. 잘못을 한 어린애랑 약속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덩치 큰 애인이 못 견디게 귀여워서 시라부는 그만 푸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후배가 아니라 남자친구로요. 시라부의 말에 우시지마가 고개를 들고 시라부를 바라본다. 나도, 우시지마가 시라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다. 잘 부탁한다. 예기치 못한 스킨십에 화들짝 놀란 시라부가 입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사귀는 사이인데,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우시지마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제게 다가오는 우시지마를 밀어내며 허....허락 없는 스킨십도 싫습니다! 하고 외친다. 다 예쁘다. 다 사랑스럽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네게, 무엇인들 못 해주겠어. 응, 그래. 참고하겠다. 말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우시지마는 시라부를 다시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이거! 이거 안 된다구요! 하며 벗어나려 낑낑대는 시라부에게, 우시지마는 잠깐만 이렇게 있어 달라고 한다. 네가 너무 소중하다. 많이 좋아한다, 시라부. 부모님께도 들어본 적 없는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어 대는 통에, 다정한 말에 면역이 없는 시라부는 귀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시지마는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어쩔 줄 몰라 몸만 배배 꼬고 있는 시라부를 바라본다. 많이 돌아왔지만,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하자. 절대 아프게 하지 않을 거다.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해사하게 웃는 우시지마에게, 시라부는 제 새끼손가락을 걸며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다. 응, 약속해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뒤로,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끝>
마감후기(두둥!!
헉 제가 드디어 완결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만세!!!!! 월간은 처음 참여한데다 우시시라 글연성 자체도 시선의 끝이 처음이라 쓰는 내내 캐해석이 이게 맞는 건가, 글이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한 애증의 시간이었습니다ㅠㅠ 실제로도 내용이 좀 갑작스럽게 끝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학업이 바빠진 관계로 더이상 다듬을 시간이 없었습니다8ㅅ8!! 개강해버렸는데 어쩌겠어요! 무튼.. 이런저런 고민은 했지만 우시지마와 시라부라는 캐릭터들이 워낙 빛나는 아이들인데다, 서로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만큼 잘 어울려서 쓰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ㅠㅠ 읽는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아 말이 너무 길어지는군요.. 어쨌든 저 완결내서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오늘 저녁엔 상으로 KGB 마시면서 과제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호에는 맞짝사랑 삽질물 같은 우중충한 말고 달달한 걸 써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공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그럼 오늘도 월간 우시시라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