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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김철수

나는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행동했다. 전혀 몰랐다. 그 당시의 나의 행동, 말투, 널 대하는 태도. 그 모든게 얼마나 어리석고 철없었는지 말이다. 

 

너는 항상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임했다. 그 말투에는 애정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라며 너의 마음을 단정 지었다. 그 단정은 꽤나 오랜 시간, 아니 우리가 결국 이별을 말하게 될 때까지도 난 그런 널 너로 알고 있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헤어지는게 좋겠군 시라부

 

넌 내 날카로운 말에도 무뚝뚝했고 헤어지자는 내 말에도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내가 너에게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울며불며 헤어지자고 소리치면 미안하다던가 내가 잘못했다던가 널 사랑한다는 당황에 빠진 네 목소리가 들릴 줄 알았다. 그건 내 완벽한 착각에 착각이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넌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다. 행복해라 시라부.

 

넌 마지막 목소리까지 차가웠고, 넌 마지막 뒷모습까지 눈물나게 멋있었다. 마치 니가 처음 내 맘에 들어온 어느 중학생때처럼. 그 조그마하던 동경이 어느새 사랑이 되고 너에게 고백을 받아 진정한 사랑이 됐지만 사랑 받지 않아 이별을 했던 그 어느 겨울 날. 난 마지막까지도 멋있게만 보이는 너의 등을 보며, 그 등이 사라지고 또 사라질때까지 울었다. 축복을 해주고 싶었던 눈이 내리는 그 거리 위에서. 혹시라도 니가 다시 올까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안은채,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너와 헤어지게 된 발단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25번째 생일. 너와 맞는 8번째 생일 중 너와 사귀고 맞는 6번째 생일이 뭐가 그리도 소중했을까. 국가대표 일로 바쁜 넌 당연한 수순으로 내 생일을 잊어 버렸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평소같았으면 미안하다는 너의 말에 괜찮다는 말로 넘어갈 일이었다. 나도 이제 지친건가. 넌 너무 바빴으니까. 내가 1순위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누군가에겐 첫 번째가 되고 싶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너에게 이별을 말했다. 아주 멍청하게 펑펑 울면서. 내가 말한 이별에 내가 상처를 받았다. 너는 당연하게 받아들인 이별이 나에겐 날 죽이는 독이었다. 꿈이라면 빨리 깨기를 원했다. 마구 얼굴을 쓸었다. 아프지도 않았고 깨지도 않았다. 너에게 이별을 고한 나에겐 지독한 악몽같은 현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난 바보였다.

 

첫날에는 그저 울기만 했다. 너에게 다시 전화할까, 내가 잠시 미쳤었다고 무릎 꿇고 빌까. 여전히, 사랑한다고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니가 싫어할가봐. 나한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정마저 다 떨어져 내 이름만 생각해도 진저리 치는 사람이 될까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나의 상상력과 함께 엄청난 일들로 나에게 다가와 날 덮쳤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했다. 그저 나 혼자 아파했다. 그때도 난 생각했다. 넌 절대 나 때문에 울지 않을거라고. 넌 나와 헤어진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거라고. 나 때문에 울긴 할까, 오히려 노아 헤어졌다고 좋아하진 않을까. 여러 생각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또 하루가 지났을땐 금새 체념한 나만 남아 있었다. 너와 있었던 안 좋았던 일들만 잔뜩 생각했다. 니가 약속 시간을 잘못 기억해 날 바람 맞힌 일, 일들 때문에 잘 만나지 못했던 일. 별로 없었지만 그 날 내 상상 속에서 만은 아주 많아 날 더 힘들게 했다. 이제 너와는 전부 끝이다. 내 마음 안에서 끝을 내고 울면서 웃었다. 그 날 달이 참 예뻤다. 우리 집엔 낡은 어항이 있다. 그 안에 물을 담은 후 달을 가둬둔 채 소원을 빌었다. 

 

-그 사람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너에게 해야하는 말을 난 애꿎은 달에게 빌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애써 웃으며 달에게 말했다. 그 날 달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눈물이 더 났다. 후렴에서는 애써 날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달님 탓을 하며 말이다. 왜 내 소원을 안들어주는 걸까 하며, 그 사람에게는 닿지도 않았을 내 말을, 왜 닿지 않았냐고 다지는 나는. 너무도 불상했고 멍청했다.

 

점점 집 밖도 안나가게 됐다. 사실 집 안에서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너와 했던 일들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그건 내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너와 자주 가던 우리집 앞 카페, 니가 좋아하던 하이라이스 집, 처음으로 영화를 봤던 영화관, 니가 안바쁠때면 항상 같이 손을 잡고 산책했던 공원. 너와의 추억이 너무 많아, 난 그곳 근처에만 가도 울었다. 니가 보고 싶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붙일 이유는 많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난 널 아직도 사랑했으면 널 미치도록 그리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난 여전히 생각했다. 나만 널 아직까지 사랑할거라고, 나만 아직까지 너의 추억 안에 젖어 널 그리워 할거라고. 넌 나같은 건 잊고 행복할거라는. 타이치의 말을 빌리면 이별한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아주 어리석은 착각을. 난 그 착각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심지어 몇일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을 핑계로 널 원망하고 날 옹호했다. 하지만 이게 내 완벽한 자기보호적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을땐 정말 많이 울었다.

 

내 착각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은 세미 선배의 전화였다.

 

-시라부, 혹시 와카토시랑 싸웠어?

 

-헤어졌습니다. 우시지마 선배랑

 

꽤나 딱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그래서 그랬던거구나. 시라부 지금 와카토시 울고 있어. 니 이름 부르면서

 

쿵,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지금 이 선배가 무슨 소리 하는지

 

-무슨 소리에요 선배

 

-말 그대로야. 같이 술먹으려고 왔는데 한잔 먹고 취해서는 니 이름밖에 안불러. 미안하데, 너한테. 사실 이거 술만 마시면 그랬었는데 너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했거든. 커플 일에 끼는 거 아니라고 타이치가 그래서.

 

쿵, 너도 나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구나. 나만 너 때문에 운게 아니구나. 나만, 우리의 이별을 슬퍼한게 아니구나.

 

-선배 지금 어디에요?

 

-응?

 

-어디서 술 마시냐고요

 

-아아 와카토시네 집, 왜 올래? 그럼 나 집에 가고. 니가 와서 잘 달래줘. 이왕이면 화해도 좀 하고 재결합도 좀 하고. 요즘 와카토시 얼굴 말도 아니야. 경기 실력은 더 말도 아니고.

 

-네 바로 갈게요.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니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큰 놀람과 감동을 받은거, 그 뿐이었다.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택시를 잡아 타고,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단 사실조차 망각한 채 너의 집으로 뛰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그래 아주 쉬운 말들이었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너에게 하지 않았던 말들이다. 부끄럽다는 이유, 나만 널 사랑하고 있는 거 같다는 착각. 있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내 말도 안되는 상상력을 자극해 널 오해하게 만들었다. 미친듯이 뛰어 너의 집 앞에 도착했다. 숨을 한번 고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답이 없었다. 술에 취해 잠든 것인가. 비밀번호를 눌러봤다. 너의 생일, 아니었다. 니가 처음 국가대표로 우승했던 날짜, 이것도 아니었다. 내 생일. 띠리릭, 문이 열렸다.
역시 나는 멍청이였다. 우리집 비밀번호는 너의 생일이다. 우리 둘다 지독한 멍청이였다.

 

문을 살짝 열었다. 그 후 움직임이 멈췄다. 아마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난 널 잡을거야. 무릎을 꿇던, 내가 당신에 첫 번째가 아니라도 좋다며 빌던, 그럼 당신은 아마 받아주겠지. 나와 같은 멍청이니까. 나 이제야 기억났어. 우리가 연애하고 처음 맡는 기념일에 니가 했던 말.

 

-고맙다, 시라부

 

-뭐가 말입니까 우시지마 선배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처음이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건. 

 

너의 말에는 꽤나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때 내게 가장 강하게 전해진 감정은 사랑해였다.

 

-저도 감사합니다. 제가 사랑하게 해주셔서.

 

용기가 없어서 아주 작게 말하고 끝냈던 말이다. 쑥스러웠고, 진심을 전하기 힘들었고 넌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말해볼까 한다. 감정을 전하는데에는 거창한 용기 같은건 필요 없다. 그냥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 작은 바람만 있어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당신을, 우시지마 와카토시 당신을 사랑한다고.

언제나 마감에 닥치면 내는거 같아 주최분께 죄송해지네요.. 이번에도 열심히 썼으니까 재밌게 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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