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USSR

夢連(몽연)
上편
Aga
신이 사는 나라, 시라토리자와에는 무녀가 있다. 무녀, 말 그대로 신의 말을 사람들한테 전하고, 사람들의 말을 신에게 전하는 역을 맡은 이들 이였다. 그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자면, 시라토리자와의 왕 조차 무녀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을 보면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무녀는 점을 치고, 꿈을 꿨다. 점을 통해 시라토리자와의 미래를 알아냈고, 꿈을 통해 사람들의 안위를 살폈다. 왕이 하는, 내외부로부터의 해를 막는 것이 나라의 일이라 하면, 무녀들이 하는 일은 자연으로부터, 다른 신들로부터의 해를 막아냈다. 그런 무녀들은 지금 이 사실을 말해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알려야하지 않겠어요? 누구도 아닌 태자와 관련된 일인데."
"하지만 이 일을 알렸다가는.."
"감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저희들이 다른 신들로부터의 간섭을 막는다 하더라도 이건 운명. 해라 분류되지 않는 것이란 말이에요."
한 무녀의 지적에 다른 무녀들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말릴 수 없었고, 말릴 수 없는 일은 받아들여야했다.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뱉은 무녀들은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
"제 1관 무녀, 려백홍. 태자전하를 뵙습니다."
자신을 무녀라 칭하는 여성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은 사내는 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그 손짓에 려백홍은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 려백홍을 바라보던 사내 또한 맞은편에 앉았다.
"무녀가 나에게 무슨 일이지?"
보통 같으면 왕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법이였다. 그것을 무녀가, 그것도 자신을 제 1관 무녀라 소개한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을 보면 왕에게도 말하지 못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어림잡아 집작할 뿐이였다.
"신께서 꿈을 하나 보내셨습니다. 모든 무녀한테요."
"꿈? 모든 무녀가 같은 꿈을 꾸었다는 말인가?"
"예. 이틀에 걸쳐 신관에서 생활하는 모든 무녀들이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바로 전하에 대한 꿈입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까지 말하는 려백홍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에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꿈이지?"
"저희에게 꿈을 준 신은 연(連)의 신입니다. 가끔씩 사람들의 반쪽을 봐주시는 신이지요. 연의 신이 전하의 반쪽을 알려주셨습니다. 헌데..."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이던 려백홍은 결심을 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뒷말을 이었다.
"전하의 반쪽이 사내였습니다."
"그것이 뭐가..."
"몇 일전, 전하께서 점력하신 동북의 호우코우의 어린왕. 그가 전하의 반쪽입니다."
시라토리자와에서 남성끼리, 혹은 여성끼리 혼인하는 것이 흔하지는 않아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였다. 3대 전의 황후도 남자였고, 신의 은총으로 아이도 잉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저리 뜸들이나 해서 꺼낸 말을 끊고 이어진 무녀의 대답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동북의 호우코우. 려백홍의 말대로 몇일전 사내, 시라토리자와의 태자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점령한 나라였다. 힘도 쇠퇴하고 있는 작은 나라를 점령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다만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왕은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당연한 것이겠지. 우시지마는 왕자, 현재는 옥에 감금되어있는 소년을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 뿐이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가 자신의 반쪽이라니. 웃기지도 않지. 자신을 죽이려드는 이가 자신의 반쪽이라니.
"전하..."
"려백홍이라했나?"
"예. 하명하실 말씀이라도.."
"아버지께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 다른 이들한테도다. 무녀들의 입단속은 철저하게 하고. 부탁하지."
"그리 하겠습니다."
우시지마의 말에 려백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우시지마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먼저 일어나지. 아직 차가 따뜻하니 더 마셨다가 돌아가는 것이?"
"괜찮습니다. 다른 무녀들을 돌보는 것도 제 일인데 어찌 저만 이렇게 놀겠습니까."
무녀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밖에 서있던 병사에게 호위를 맡기고 나서야 그녀를 돌려보냈다.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우시지마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감옥이였다. 예를 갖추는 보초들을 지나 한 옥문 앞에 섰다. 3평 남짓한 속에서 한 소년이 몸을 움크리고 있는 것이 나무기둥 사이로 보였다. 죄수들이 입는, 누더기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천조가리를 잔뜩 모아 몸을 가린 소년은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어 자신을 보지 못 한듯하다.
"그대, 이름이 뭐지?“
"....."
소년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물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년의 몰골이 제대로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심하군."
"...뭐야,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왜? 아직 볼일이 남아있나보지?"
"다시 묻지. 그대의 이름은 뭐지?"
"네 녀석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 없어."
소년은 사나웠다. 입술을 물어뜯었는지 피딱지가 앉은 입술, 셀쭉히 들어간 볼, 울었는지 더러워진 뺨. 그 사이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과 가을의 밀밭을 떠올리게 만드는 머리카락이 눈길을 잡는다. 자신에게 이름을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잔뜩 날이 선체로 노려보는 소년을 우시지마 또한 바라봤다.
옆에 서 있던 보초에게 문을 열라 말했다. 그 말에 잠시 주춤하던 보초가 문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풀었다. 기름칠 되어있지 않는 나무문이 열리고 우시지마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우시지마를 보초가 말렸지만 무시하고 발걸음을 계속했다.
제대로 몸도 가두지 못할 정도인가. 바들거리는 팔다리를 한껏 모으며 우시지마를 피하는 소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조가리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괜히 눈에 밟혔다. 제 어깨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소년에게 둘러줬다. 아니, 둘러주려 했다. 자신의 의도를 알았는지 소년의 손이 제 손을 쳤다.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망토를 한 번, 소년을 한 번 바라봤다.
"이제 와서 뭐야, 연민이라도 생겼나보지? 그딴거 필요 없으니까 저리 꺼져."
"입도 험하군. 한 나라의 왕의 자리까지..."
"내가. 그 입. 닥치라고 했을 텐데."
소년의 움직임은 순식간이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소년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우시지마를 덮쳤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방심하고 있던 우시지마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 소년은 우시지마의 목을 졸랐다.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제대로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부들거리는 손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소년은 우시지마의 목을 졸랐다.
그리곤 기절했다.
분명 갑자기 일어났고, 힘을 주었고, 분노로 인해 몰린 열을 감당하기에는 몸이 많이 쇠약해진 탓이겠지. 자신의 몸 위로 쓰러진 소년을 힘을 줘 떼어놓으려는 병사를 말렸다. 등에 손을 둘러 감싸 품에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진 망토를 주워 소년의 몸을 감싸면서 감옥을 나왔다.
생각보다 소년의 몸은 말랐었다.
*
소년이 살아온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다. 15년. 그것이 소년이 살아온 겨울의 수였고, 35년. 그것이 앞으로 소년이 살아갈 최소한의 겨울의 수였다. 그 남은 겨울의 수동안 기울데로 기운 나라를, 적어도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의 기반만이라도 세워두자. 그렇게 다짐했었다. 3개월 만에 그 다짐은 무너졌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진 것 이였다.
화가 났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신은 이런 일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것일까. 나라를 점령한 이들의 감옥에서 물도, 음식도 입에 대지 않은 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모든 것이 무너졌기 때문 이였고 속에서 들끓는 화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소년을 갉아먹었다.
그럴 때에 나타난 것이 사내였다.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에 봤던 사내였다. 자신의 나라를 침략한, 너무나도 증오스러운 존재. 무참하게 짖밟아 놓고서 이제 와서 선량한 척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워서 달려들었다. 그리곤 기절했다.
자신이 기절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낯선 곳에서 눈을 떴을 때였다. 감옥은 아니였다. 등 뒤에 닿는 푹신함와 몸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 코를 통해 들어오는 약초의 향이 감옥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드디어 눈을 뜨는군. 이대로 안 일어날까 걱정했다."
"....당신이?"
이제는 익숙하다 여기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뻐근한 목을 움직여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사내의 모습에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무표정한 얼굴로 걱정이라니. 잘도 말하는군. 속으로 욕하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소개가 늦었군. 난..."
"당신을 모르면 이 대륙의 사람이 아니지. 누군지 잘 알고 있어."
"그런가. 난 너에 대해 하는 것이 없는데."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주요인물정도는 외우는 것이 좋아. 아니면, 난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소년의 말은 아직도 날카로웠다. 소년의 말에 우시지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말대로 해야겠다.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는 것은 사양이다.
"시라부 켄지로. 그게 내 이름이야."
"시라부..켄지로."
"그래. 그리고 그만 나가주지 않을래? 당신이랑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아."
"..아아. 미안하군."
소년, 시라부의 말에 우시지마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우시지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시라부는 눈을 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받히는 소리. 문 넘어에서 들리는 작은 대화소리.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시라부는 감았던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가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자신은 어째서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었는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자신의 나라, 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하고 죄스러운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의 누이와 어미는 어찌 되었는지. 생각할 것도, 걱정되는 것도 너무나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려앉은 눈꺼풀이 무거워. 비겁한 변명을 내세우며 감은 눈은 시라부를 어둠으로 이끌었다.
2월호부터 우시시라 월간으로 찾아뵙게된 Aga라고 합니다. 다른 존잘님들과 함께 하는 월간이라니...여..열심히 하겠습니다! (몽연은 상,중,하편으로 나뉘어 연재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