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USSR

금붕어 시체
종합병원
오늘 아침도 선명한 주황색을 띤 금붕어 한 마리가 수면 위에 배를 보이고 둥둥 떠 다녔다.
우시지마는 맨손으로 죽은 금붕어를 건져 어항 옆에 내려놓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작은 물고기들이 죽어나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의 초여름에 열린 축제에서 시라부가 몇 마리 사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금붕어들로 가득하던 어항은 이제 텅 비었다. 우시지마는 덤덤하게 금붕어의 시체를 치웠다. 여름의 더운 공기에 썩기라도 하면 그 역함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었다.
그늘진 뒷마당에 불어온 여름 바람에 창문 밖의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우시지마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풍경을 향해 돌아갔다. 투명한 유리 속의 붉은 끈과 알록달록한 방울. 그의 집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시라부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눅눅한 공기가 우시지마를 몇 번이고 욕조에 담긴 차가운 물에 잠기게 하는 이 무더운 여름은 그것마저 별 것 아니게 만들고는 했다.
'.....이제 그만하고 헤어질까요, 저희.'
시라부와 이별한지 일주일하고 이틀이 지났다. 담담하다 못해 싸늘하다고까지 느낀 표정의 시라부와 이별하던 날은 유독 더운 날이었던 것 같았다. 밤낮으로 덥기 그지없는 그 많은 여름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그 날은 지독하게 덥고도 차가웠고 아팠다. 더운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차가운 이별이었던 것 같다.
투명한 얼음이 달아오른 피부에 닿았을 때 차가움을 잔뜩 남기고 이내 물이 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시라부는 우시지마와 동거하던 집에서 제 짐을 정리했다. 그것들을 정리하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옷가지들과 신발들, 업무에 필요한 것들 그리고 잡다한 물건들이 전부였다. 시라부는 우시지마의 집에서 제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딱히 지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시지마가 선수 생활로 자주 집을 비우는 상황에서 동거인이자 연인인 시라부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은 아마 이 안에 없을 것이었다. 우시지마의 다부진 몸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 이 차가운 욕조도 시라부가 고른 것이었고, 욕실의 타일도, 커튼도, 비누도, 칫솔도, 심지어 화장지마저도 시라부가 고른 것이었다. 시라부는 빠져나갔지만 시라부의 흔적은 남았다, 라. 우시지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차가움이 느껴지는 물을 손으로 휘저었다. 아주 작은 기포가 일었다가 다시 사라졌다.
*
시라부의 입 안에서 제법 큰 조각에, 두께 있던 초콜릿이 치아 사이에 물려 부서졌다. 옆에서 그런 시라부를 바라보던 카와니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초콜릿을 녹여먹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시라부는 초콜릿을 깨물어 부수는 스타일이었다.
단단한 초콜릿을 부수는 치아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앙 다문 입술 너머에서는 초콜릿이 다시 사정없이 부서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지나치게 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와니시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제 친구를 쳐다보았다.
'신세 좀 지자, 타이치.'
시라부가 짐을 챙겨 다짜고짜 카와니시의 자취방으로 들어온 지 일주일 하고 이틀이 지났다. 남자 셋이 살 수는 없겠지만 둘 정도 살기에는 넉넉한 자취방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연락도 없이 본인의 짐이 든 캐리어를 들고 찾아온 시라부를 보고 당황했던 카와니시였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눈치가 빨랐던 그는 제 친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시라부는 그래서인지 그런 카와니시를 편하게 느꼈다.
종종 우시지마와 싸우곤 하면 멀지 않은 카와니시의 집에 하루 정도 머무르곤 했던 시라부였다. 물론 카와니시에게 매번 꼬박 꼬박 연락을 하고 허락을 구했고. 그렇기에 그런 시라부가 갑작스레 아무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 한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낡은 캐리어를 들고 찾아올 일은 하나 뿐이었다.
결국 헤어진 거겠지.
카와니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시라부의 전공서적이 팔락이는 소리만 났다. 더운 여름, 에어컨 하나 없는 방이었지만 카와니시는 어째서인지 뜨거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공기가 차갑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게 활짝 열린 창문과 선풍기 바람이 합쳐진 물리적인 이유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차가운 공기는 분명 땀을 흘리면서도 절대 선풍기의 세기를 올리지 않는 시라부가 내뿜는 것이겠지.
한참을 시라부를 바라보던 카와니시는 냉동실의 문을 열었다. 땀이 서늘하게 식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얼음을 꺼내 물 컵에 빠뜨리는 소리가 시원했다.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연신 부채질이며 차가운 물이며 난리인 카와니시와 달리 시라부는 땀을 흘리면서도 반팔에 긴 바지를 입은 채 그 자리에 앉아 미동도 없었지만.
*
"찜통이네, 찜통."
"이렇게 더운 데서 어떻게 사는 거야?!"
여름은 아이스의 계절이다. 차가운 아이스를 입에 하나씩 물고 찾아온 세미와 텐도는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온갖 문만 활짝인 카와니시의 자취방에 들어서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라부가 카와니시의 집에 눌러앉았다는 말을 듣고 우시지마에게 연락을 해본 두 사람이었지만, 들려오는 건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기계음뿐이었다. 카와니시가 손 부채질을 하며 나와 거실에 앉은뱅이 책상을 펴놓고 있는 시라부를 가리켰다. 세미와 텐도가 이해한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세미와 텐도가 선풍기 앞에 가서 앉는 동안 카와니시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이스의 껍질을 깠다. 붉은색의 아이스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입에 아이스를 넣은 카와니시가 이번엔 노란 아이스를 벗겨내곤 책상 앞에 앉은 시라부에게 아이스를 건넸다. 연갈색 눈동자가 카와니시를 향했고 바라본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였다. 시라부가 아이스를 친구의 손에서 가져가 입에 넣었다. 자신을 머무르게 해준 카와니시의 호의까지 거절할 만큼 기분이 안 좋지는 않았다.
아이스는 빠르게 녹아갔다. 좁은 거실에 둘러앉은 네 사람의 손에는 색색 깔의 물이 들었다. 시라부는 노란 물이 들은 제 손등과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아이스를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날은 더웠고, 흘러내리는 땀에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안 좋은 기분이 나아질 틈도 없었다. 시라부 자신은 그 날에 멈춰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을 훌훌 잘도 가더라는 일이었다. 방학이 끝나려면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전공서적을 뒤적이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 이별을 고한 것은 저인데 씁쓸하고 텁텁한 기분이 들었다. 거센 장마에 쓸려 나간 것은 공기 중의 먼지 뿐만이 아니라 저와 우시지마 사이의 진득한 무언가였을지도.
"....켄지로, 울..어?"
단단한 고요를 깨트린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카와니시의 당황한 음성에 시라부는 제 눈가를 문질렀다. 투명한 액체가 손에 잔뜩 묻어나왔다. 무의식중에 눈물이 나온 것 같았다. 시라부는 그런 제가 꼴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시라부의 모습에 세미와 텐도는 아이스를 입에 문 채로 눈만 깜박였다. 울컥하고 감정이 밀려들었다. 시라부는 그 감정들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날이 더운 탓이다, 지나치게 더운 탓이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 시라부가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한 더운 여름의 오후였다. 비가 오려는지 푸른 물감을 들이부은 하늘을 회색의 먼지 같은 구름들이 뒤덮었다.
*
비가 후두둑 하늘에서 흩뿌려졌다. 누군가가 흘리는 서러운 눈물 같은 빗소리에 깜박 잠들었던 우시지마가 눈을 떴다. 꿈을 꿨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항에서 날 법한 물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이 어항에 살아남은 금붕어는 우시지마 하나였다. 시라부의 손길이 거둬진 집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항과 같았다. 우시지마는 문득 금붕어들이 왜 그리 죽어나갔는지 깨달았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서 죽었던 것이다. 그 쉬운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하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시라부 켄지로가 없는 우시지마 와카토시 역시 어항의 금붕어들처럼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기력했다. 그 좋아하던 배구도 그리 하고 싶지 않았다. 끔찍한 빈자리와 허무함에 핸드폰마저 꺼놓았다. 그렇게 일주일하고 또 이틀을 지냈다. 헤어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몇 번이고 찬 욕조에 몸을 빠트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인간이 주는 보살핌에 익숙해진 금붕어는 그 것이 사라졌을 때 금세 죽어버린다. 그것이 지금의 우시지마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사랑은 참 무서운 것이었지. 우시지마는 무작정 현관으로 향했다. 우산을 집어드는 손길을 저지하기라도 하듯이 현관의 벨이 딩동하고 울렸다.
*
시라부는 울대로 울고 난 뒤 무슨 생각인지 우산 하나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갔다. 세미와 텐도의 따라가야 되지 않냐 는 말에 카와니시는 고개를 저었다.
"...우시지마상께 갔을 거예요."
*
"우시지마상."
"시라부...?"
우시지마는 현관문을 열자 보이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시라부를 보고 적잖게 놀란 듯싶었다. 숨을 색색 몰아쉬는 시라부의 옷과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젖어있었고 펼쳐진 우산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뛰어 온 탓에 옷은 흐트러진 채였지만 시라부는 정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가 만 손은 조금 위로 올라가 있었고, 신발은 구겨 신은 모습이었다.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외로웠던 거고, 그걸, 그걸 우시지마상한테 마구잡이로 풀어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도 좋다, 시라부."
"....안아주세요."
답지 않게 마구잡이로 말을 내뱉는 시라부의 얼굴에 물이 흘렀다. 우시지마는 그런 시라부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라부가 진정하기를 바랐다. 곧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는 시라부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던 탓일까. 시라부는 제 얼굴에 흐르는 물을 닦았다. 한 번 심호흡을 한 시라부는 이내 우시지마에게 팔을 벌렸다. 아흐레 만에 본 연인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헤어지자고 한 것도 외로움으로 인한 심술이었다. 진심이었을 리 없지. 제가, 우시지마 와카토시에게. 우시지마는 팔을 벌리는 시라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 몸이 가져다주는 온기에, 더운 여름밤임에도 불쾌하지 않은 따스함에 우시지마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시라부 켄지로는 어딘가 많이 닮아 있었다. 외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무언가가 많이.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아무도 모르고 있겠지만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었고 시라부 켄지로는 주위 사람들-그러니까 우시지마를 제외한-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점이 제일 닮은 두 사람이지만, 다른 이런저러한 무언가들도 많이 닮은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시라부가 모든 것을 우시지마에게 맞춰주는 것에 비해 우시지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사유로 모든 것을 시라부에게 맞춰주지만은 못한다는 것이겠지. 외로움이 많은 시라부는 그에 대해 여러 번 우시지마에게 이야기했고, 우시지마는 매번 그것을 듣고도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밝혔다. 그것이 두 사람의 유일무이한 문제라면 문제였다.
시라부도 우시지마가 자기에게 맞춰줄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시라부에게 맞춰주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것으로 몇 번이고 충돌했고 매번 후회했다. 이번에도 외로움에서 비롯된 심술. 어디 제가 없는 당신이 멀쩡할 수 있을까, 하는 우시지마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시라부의 심술이었다. 이렇게 심술을 부리고 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시라부는 덤덤하고 차가운 얼굴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충동적이기도 했고 심술이기도 했던 그것이지만, 며칠 새 상한 우시지마의 얼굴을 보니 괜히 또 눈물이 났다.
“...뭘 하고 싶지, 시라부?”
“우시지마상이랑 같이 씻고 잘래요. 더우니까, 에어컨도 좀 틀고...”
“...또?”
“타이치네에 있는 짐은 내일 가져올래요.”
“...다른 건?”
“내일 금붕어 새로 사와요. 이번엔 죽이지 말기.”
“...끝인가?”
“그리고 저 외롭게 하지 말기.”
“노력하지.”
우시지마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시라부의 말을 들어주었다. 시라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괜한 심술에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우시지마다운 대답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길고 길었던 하루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중이었다. 타이치네 집이 얼마나 더웠냐면요,...하고 시작된 시라부의 말은 잠자리에 누워 우시지마의 토닥임에 잠들 때까지 이어졌다.
더 이상의 금붕어 시체는 없을 여름이었다.
안녕하세요, 월간 우백 2월호부터 격월로 참가하게 된 종합병원입니다.
방금 마감을 마치고 후기를 적는 중이에요.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은 오전 1시입니다...
과거의 제가 미래의 저에게 떠맡기는 바람에 지각이든 펑크든 낼 뻔 했는데 퇴고도 없이 후다다닥 써내는 바람에 늦지는 않았네요...(안도
다른 존잘님들 글그림도 많을 예정인 월간 우백이니 제 글은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건 다른 거였지만...그냥 이 글을 쓰게 됬네요.
원래 쓰려던 건 4월달에 쓰려고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우백 파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